[더버터] 매일 한 명씩 사라진다…아이들의 죽음, 어떻게 막을 것인가

2025-05-14

‘학생마음건강증진법’ 제정을 위한

국회의원·교사·NGO전문가 3인 대담

초등학교도 안심할 수 없다. 초등학생 자해와 자살 사고가 조용히 늘어나고 있다. 현장 전문가들은 경고등이 켜졌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보내는 구조신호에 더 늦기 전에 응답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서지영 의원이 발의한 ‘학생마음건강증진법안’은 아동청소년의 마음건강에 집중한 최초의 법안이다. 전문가들은 이 법안이 한국의 미래세대인 아동청소년의 자살률을 낮추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서지영 의원, 우지향 서울선사고 전문상담교사, 류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이하 유니세프) 아동권리실장이 지난 4월 24일 서울 마포구 유니세프에 모였다. 법안의 의미와 필요성, 현실화를 위한 과제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동청소년 마음건강, 개인의 문제인가

-2023년 아동청소년(10~19세) 자살 사망자 수는 370명이었다. 하루에 한 명씩 자살로 아이들을 잃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우지향(이하 우)=매체의 영향이 크다. 24시간 욕설하는 유튜브, 자해나 자살에 대한 내용이 여과 없이 등장하는 소셜미디어를 보면서 자살을 힘들 때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정서적 어려움에 대처할 방법을 익히지 못해서 그렇다. 내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보고 이야기도 해보고 해소하는 방법도 배워야 하는데 아이들이 이런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류현(이하 류)=마음건강 문제를 숨기는 아이들도 많다. 실제로 아동청소년 자살사망자 대부분이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정상군에 속했다. 학교생활도 잘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 주변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다.

▶서지영(이하 서)=한국 사회는 아동청소년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여겨왔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이 문제를 다루는 법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이번에 법안을 만들면서 비슷한 법을 다 찾아봤다. 교육부의 ‘학교보건법’은 보건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법인데 마음건강에 관한 내용은 부족했다.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한 법이고, 여가부의 ‘청소년기본법’은 모든 청소년 관련 내용을 망라한 법이다. 아동청소년 마음건강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법이 시급하다.

-사회적인 관심과 시스템의 부재 속에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과 혼란이 클 것 같다.

▶우=자살과 죽음을 생각하는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 최근 자살 사고가 있었던 한 초등학교에서 생명존중에 대한 강의를 요청해 다녀온 적이 있다. ‘나는 왜 태어났는지’ ‘어떤 존재인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는 초등학생들이 많았다. 자기 자신에 관해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고 싶어 했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이런 수업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학교에서 자살예방교육이 있지만 형식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자살예방교육은 자살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이 들어가서 대다수 아이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내 감정과 마음을 살피고 관리하는 법, 타인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사회정서교육’이 학교 현장에 더 필요해 보인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

▶류=미국은 사회정서교육을 정규교과 안에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사회정서교육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고 호주에서는 국가교육과정에 통합해 운영한다. 대부분의 마음건강 문제가 14세 이전에 발생하기 때문에 유아기에 시작해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사회정서적 역량을 키워주는 게 효과적이다.

보호자 80%는 상담을 거부한다

-‘학생마음건강증진법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서=한마디로 ‘치료’보다는 ‘예방’에 방점이 찍힌 법안이다. 기존의 치료 중심 지원에서 벗어나 예방-발견-치료로 이어지는 통합적 마음건강 지원체계를 도입해 모든 학생이 조기에 마음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류=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수년 전부터 아동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보편적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세계보건기구(WHO)와 협력해 마음건강 교육자료를 개발하고 4년째 초·중·고등학교 현장에 보급하고 있다.

▶서=사회정서교육에 대한 내용도 법안에 담았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정서교육의 효과가 주목받고 있다. 작년에 우리나라 교육부도 사회정서성장지원과를 신설했다. 마음건강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보호자’ 교육이 의무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더라.

▶우=보호자에 대한 교육은 꼭 필요하다. 아이들이 힘들다며 찾아와서 상담을 받고 난 뒤에 보호자에게 연락하면 ‘우리 아이를 비정상으로 보지 말라’며 도움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보호자 상담을 요청했을 때 받아들이는 사람은 20%에 불과하다. 80%는 거절한다. 놀라운 건 그 20%의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진다는 것이다.

-사례가 있다면.

▶우=고등학교 2학년 아이였다. 자해와 자살 시도가 있어 상담을 진행했다. 학교생활도, 대인 관계도 어려워하고 자존감도 너무 낮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이 맞벌이하면서 지방으로 출퇴근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1학년 동생을 등하교시키고 밥 챙겨주는 일을 혼자 도맡아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집안 정리가 안 돼 있다면서 혼내기만 했다. 아이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해 생각했다. 친구들은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고 돌봄을 받는데 나는 뭐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 부분이 해소되지 않고 아이에게 남아 있었다. 부모 상담을 통해 이 내용을 듣게 된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아이를 위로했다. 그 후로는 아이가 너무 많이 밝아져서 보호자의 역할이 크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류=유니세프도 보호자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음건강 교재를 제작할 때도 ‘보호자용’을 따로 만들어 배포했다. 보호자가 자신의 감정과 마음, 스트레스에 대해 먼저 이해한 다음에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순서로 구성된다. 보호자가 행복해야 아이의 마음건강을 잘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상담교사들 사이에서 보호자용 마음건강 교재에 대한 반응이 무척 뜨겁다.

▶서=이번 법안에도 부모 교육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양육 방식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의 문제점만 생각하면 개선 방향이 안 보일 수 있다. 앞으로 지속적인 토론을 거쳐 내실 있는 법안이 되도록 조정 작업을 할 예정이다.

학교-가정-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이 법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지금은 학교마다 전문상담교사가 1명씩 배치돼 있다. 한명이 수백 명의 아이를 책임지는 구조라 부담과 공포가 느껴질 때도 있다. 학교 규모에 따라서는 700~800명, 1000명까지 돌보는 경우도 있다.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기 어렵다. 혹시나 상담교사가 문제를 포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더 잘 살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고 때로는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전문 인력의 확보와 배치에 대한 내용이 법안에 담겼으니 학교의 풍경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서=교사 한 명이 모든 아이를 책임지는 건 말이 안 된다. 전문상담교사-정신건강전문가-사회복지사 등 ‘팀 기반’으로 대응하는 게 핵심이다. 선생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게 중요하다. 중앙학생마음건강지원센터를 만들고 지역별로 센터를 꾸려 학교와 연계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우=지역 연계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상담의 영역을 넘어선 복지의 영역, 경제적 지원 등을 챙겨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까지는 교사가 개별적으로 파악해 필요한 서비스를 찾아주는 구조였다. 지역 센터나 기관들이 함께 해결책을 찾아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학교 중심으로 운영되던 마음건강 지원의 큰 틀이 바뀌는 건가.

▶류=학교-가정-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이는 협력체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학교 중심 지원에서 소외됐던 ‘학교밖청소년’도 끌어안을 수 있다.

-아동청소년 자살을 예방하고 나아가 OECD 1위인 한국의 자살률을 낮추려면 어떤 논의가 추가로 필요할까.

▶류=교육부, 보건복지부, 여가부 등 아동청소년 마음건강을 다루는 부처가 분산돼 있고 서로 연계가 안 된다는 점이 아쉬웠는데 이번 학생마음건강증진법안은 최초로 부처 간 통합법안으로 제안됐다. 통합법안이 나와야 총괄부처가 생기고 예산도 담보될 수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 서지영 의원님이 첫 단추를 잘 끼워주셨다.

▶서=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교육 당국에 요청할 게 많다. 꼭 하고 싶은 건 ‘마음건강검진’이다. 모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건강검진을 법제화하고 싶다. 아이들의 신체발달 상태를 관리하기 위해 영유아검진을 하는 것처럼 마음건강 문제를 꾸준히 관찰하고 관리해 주는 것이다.

▶우=몇 년 전 유럽에서 비슷한 걸 봤다. 아이들의 심리정서적 어려움에 대해 태어날 때부터 국가가 책임지고 스크리닝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어떻게 양육되고 있는지, 정서적 어려움으로 인한 신체화 증상이 없는지 정신과 전문의가 체크하는 식이다. 신체적인 건강함이나 학습적인 부분만 신경 쓰는 우리나라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마음건강이나 공동체의 행복에 대한 국가 정책이 필요하다.

▶서=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마음건강이라는 키워드가 이제라도 우리 사회에 등장하고 있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마음건강 이슈에 투자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공동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일이다. 많은 사람이 마음을 모아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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