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에서] 혐오표현에 대항할 수단

2024-10-17

로라 베이츠의 ‘인셀 테러’(위즈덤하우스, 2023)에서 소개된 미국 인셀들의 혐오표현의 사례들은 충격적이다. 일례로, '백인 샤리아'라는 표현이 대안 우파 웹사이트를 거의 장악하고 있는데, 백인 남성이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이슬람 원리주의식 주장을 자기식대로 차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42면). '백인 샤리아'는 그나마 “온건한" 편이고 더욱 "과격한" 표현들이 많다. 독서를 마치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한가하게 들린다.

그런데 ‘인셀 테러’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매력자본’(민음사, 2013)의 저자 캐서린 하킴 박사조차도 "선정적이고 매우 여성혐오적인 주장"의 주범으로 단언한다. 하킴 박사의 논증 중 상당수가 오류이거나 편향에 기초했을 수 있고(반박되는 것이 사회과학의 숙명이다), 결론 중 상당수가 여성혐오적일 수도 있다. 학술적 권위와 형식을 갖춘 혐오표현의 해악이 더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에도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바로 이 때문에 ‘여성혐오'나 ‘혐오’가 곧바로 범죄의 구성요건요소가 되기에 부적당하다. '백인 샤리아'에도 적용되고 하킴 박사의 학술적 오류에도 적용되는 광범위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혐오표현 개념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형사처벌(‘혐오표현죄’)의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해서 범람하는 혐오표현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혐오표현 개념보다는 명확성이 높은 대리(proxy)개념을 통해 혐오표현 중 상당수를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달성할 수도 있고, 형사사법이 아닌 규제당국과 정보통신사업자가 만들어가는 '규제된 자율규제'의 역할이 확대될 수도 있다.

독일은 2018년 네트워크집행법(Netzwerkdurchsetzungsgesetz)을 시행한 후 난민과 다른 인종에 대한 혐오발언(Hassrede)을 규제해 왔다. 페이스북, X 등 서비스제공자에게 24시간 이내에 불법적 게시물을 삭제 또는 차단할 의무를 부과하고, 의무를 해태하면 과태료를 부과했다. 네트워크집행법은 올해부터 EU의 DSA를 받아들인 디지털서비스법(Digitale-Dienste-Gesetz)으로 통합되었다. 우리나라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불법정보의 삭제나 접속차단을 요구할 수 있고, 불이행에 대해서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재조치를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를 이유로 권고조치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기존의 규범에서 요건을 확대하거나, 제재의 수위를 높이거나, 규제기관의 역량을 강화해 혐오표현에 대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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