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많은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별세한 사람들은 한 시대의 마침표인 셈이다. 마침표를 찍고 새 마음 새 뜻으로 새 문장을 시작하듯 세월이나 시대도 마침표를 찍는다. 그 문장 안에는 수많은 느낌표와 물음표, 쉼표, 말없음표, 따옴표 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
가신 이들의 삶은 나의 세상살이를 비추어보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추억의 한 장면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리움에 젖기도 하고, 위로받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그래서, 가신 이의 삶을 그리움으로 되새김질하는 시간은 소중하다.
올해 우리 곁을 떠난 문화 예술 쪽 몇 분의 뜻깊은 발자취를 되살펴 본다.
▶ 배우, 연기자들
‘세기의 미남’으로 이름을 날렸던 영화배우 알랭 들롱(1935~2024)이 우리 곁을 떠났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로 일약 전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르면서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고요한 분위기를 풍기는 들롱의 신비로운 외모는 우리 젊은 시절 청춘의 한 페이지를 불러온다. 할리우드 진출을 시도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프랑스로 돌아온 들롱은 1960~1970년대 프랑스 영화계를 이끈 대표적인 배우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고, 2017년 은퇴를 선언했다.
말년에는 거의 활동을 못했다.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고, 오랜 투병 끝에 안락사를 결정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한국의 배우로 올해 세상을 떠난 스타는 ‘한국의 그레고리 펙’으로 불린 미남배우 남궁원, 감칠맛 나는 감초 연기로 이름난 오현경, 일용엄니 김수미, 연극배우 권성덕 등이 있다.
▶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일본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1935~2024)는 백인 지휘자 일색의 지휘계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동양의 마에스트로였고, 당대의 거장 카라얀과 레너드 번스타인의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지휘자였다. 그는 1973년부터 29년 동안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이후 빈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그는 그래미상을 2회 수상했고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으며, 케네디 센터의 명예 음악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시아 음악가들의 롤모델’이었지만, 동양인 지휘자에 대한 편견도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1980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오페라 〈토스카〉를 지휘하던 중 관중들의 야유를 받은 일은 유명하다.
2010년 식도암 수술을 받은 후에는 여러 합병증으로 무대에 제대로 서지 못했다. 하지만 2022년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고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을 지휘한 장면으로 전 세계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인, 문인들
시집 〈농무〉로 한국 민중문학의 새 지평을 열고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신경림 시인(1936~2024)은 대중의 삶과 괴리된 현학적인 작품을 경계하며, 당대의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뚜렷한 문학관을 견지하며, ‘민중문학 개척자’로 평가받았다. 1973년 발간한 첫 시집 〈농무〉는 1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신경림 시인은 1970~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서 문단의 자유실천운동과 민주화운동에도 부단히 참여해 왔다. 암으로 투병하던 신 시인은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한편, 성춘복 시인(1936~2024), 김광림 시인(1929~2024), 송기원 소설가(1947~2024) 등 문인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미주 한인문인으로는 손용상 소설가(1946~2024)가 올해 별세했다. 많은 작품을 남겼고, 마지막 순간까지 순수문예지 〈한솔문학〉을 발간하며, 미주 이민문학 발전에 앞장섰다.
그밖에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작가이자 똘레랑스를 역설한 언론인 홍세화(1947~2024), UC 어바인 교수로 재직하며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작품활동을 펼쳐온 1세대 디아스포라 작가 민영순(1953~2024) 등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아침이슬〉의 작곡가이자 가수인 ‘뒷것’ 김민기(1951~2024)도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노래 한 구절을 모든 가신 이들에게 바친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장소현 / 시인·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