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3분기 국내 방산 4사 중 유일하게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KAI의 수주 실적은 최대치이지만 사업 구조상 자금 회수가 길어 외부조달에 의존하는 '순차입 경영'에 돌입했다. 대표이사 공석이 5개월째 지속되는 가운데 재무 압박이 점차 심화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경영개선위원회를 운영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Quick Point!
KAI 3분기 실적 국내 방산 4사 중 유일하게 부진
영업이익·매출 모두 전년 대비 감소
수주 실적은 최대치지만 자금 회수 지연으로 재무 압박 심화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AI는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60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1% 감소했다. 매출은 22.6% 줄어든 7021억원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육군 소형무장헬기(LAH)의 납품 시점이 4분기로 늦춰지면서 실적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방산 4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LIG넥스원·KAI) 중에서 3분기 실적이 후퇴한 건 KAI가 유일하다. KAI의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3분기 방산 4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1조2839억원으로 72.8% 늘었다. 이 기간 합산 매출 역시 9조8574억원으로 83.4% 증가했다.
이 가운데 KAI는 외부조달 비중을 높이는 순차입 경영 체제에 들어섰다. 올해 3분기 말 KAI의 순차입금은 1조8851억원으로 지난해 말(8939억원) 대비 약 1조원 증가했다. 이 기간 현금성자산은 1346억원으로 작년(1418억원)보다 5.1% 줄었고, 올해 들어 최저 수준이다.
외부 차입 의존이 높아진 건 현금 창출력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KAI의 연결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올해 상반기 마이너스(-) 6073억원이다. 이 지표는 2023년(-7000억원)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매년 비슷한 규모로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올해도 이 같은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수주산업 특성과 방산 호황이 맞물리면서 유동성이 고갈된 모습으로 풀이된다. 사업 구조상 수개월에서 수년 단위로 무기를 제작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계약 후 선금 일부를 지급받은 뒤 나머지 대금은 인도 완료 시점에 받는다. 국내외 정부를 고객사로 계약해 검수 및 수출 승인 절차를 거치는 만큼 수개월의 납품 지연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실제 KAI의 재고자산은 2023년 1조7355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3조1359억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재고자산은 아직 납품되지 않고 제작 중인 자산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납품을 끝내고 아직 못 받은 금액인 매출채권은 5141억원에서 1조1906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투자비용도 매년 증가 추세다. 3분기 말 KAI의 시설·개발·자본투자 비용은 2431억원으로, 전년 동기(1362억원)보다 78.5% 증가했다. 앞선 투자비용은 2023년 1318억원, 2024년 2106억원으로, 올해는 3분기 만에 지난해 연간 투자비용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한 상태다.
사실상 KAI는 생산 집중 단계를 지나면서 일시적인 재무 압박이 심화된 단계로 볼 수 있다. 수주량이 대폭 늘어난 반면 제작·납품 기간이 길어져 자금 회수가 안 되고, 기존 보유 현금과 선급금만으로 생산 및 개발비용이 부족해 빚을 끌어다 쓰고 있는 모습으로 분석된다.
본격적인 납품 시기에 돌입하면 KAI의 실적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형 전투기 KF-21은 현재 양산 중이며 내년 하반기 1호기 납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8년 40대, 2032년까지 총 120대가 공군에 도입될 예정이다. FA-50 경전투기는 내년부터 폴란드와 말레이시아에 인도를 시작한다. 3분기 말 KAI의 수주잔고는 26조2000억원으로 최고치 수준에 달해 있다.

다만 납기 지연 등 변수가 지속될 경우 재무 리스크는 심화될 우려가 크다. 선투자 후 자금 회수의 선순환 구조가 둔화되면 현금 유출이 지속되는 가운데 외부 차입 폭증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 빚 중심의 경영 구조로 굴러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실제 폴란드 FA-50은 올해 말부터 공급 예정이었으나 미국의 무장 통합 관련 승인절차 지연으로 수출이 연기됐다.
이런 상황에 KAI는 정권 교체 후 기존 사장이 사임해 5개월째 '리더십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KAI 노동조합은 대표이사 공석으로 의사결정이 멈춰서면서 해외 고객사 신뢰 저하, 신규 계약 지연, 기술 인허가 차질 등 직접적인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올해 수주 성과를 기준으로 보면 둔화 흐름은 뚜렷하다. KAI의 올해 3분기 누적 수주액은 3조6640억원으로 연간 수주 목표(8조50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는 전자전기체계 개발 사업, 블랙호크 헬기 성능개량 사업, 천리안 5호 위성 개발 사업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신 결과다.
KAI 노조는 지난 6일 입장문을 통해 "장기간 리더십 공백에 놓인 것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닌 정부의 정치적 무책임 그 자체"라며 "사장 부재로 인해 KAI는 경영·수출·기술개발·노사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의사결정이 멈춰 선 채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놓여 있다"고 호소했다.
회사 측도 대응 마련에 나섰다. KAI는 지난 9월 30일부터 차재병 대표이사 대행을 위원장으로 하고, 경영관리본부장을 간사로 해 전략과 재무, 조직, 리스크 해결 분과를 둔 경영개선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KAI는 최근 사내 공지를 통해 "최근 잇따른 사업 수주 실패로 KF-X와 LAH 등 대형 체계개발 사업 이후 미래 먹거리 전망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기존 사업도 현안과 리스크가 지속되며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수주·사업관리·개발·생산 등 경쟁력 근간이었던 기능별 역량이 점진적으로 쇠퇴하고 비용 증가로 이어져 만성적인 수익성 악화를 야기하고 있다"며 "경영위기 대응을 위해 전사적 역량을 결집할 경영개선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KAI는 경영개선위원회 회의 결과, 경영 위기 극복 의지 결집 차원에서 임원들이 올 하반기 성과급을 반납하기로 했다. 또 주 6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출장 처우 조정을 시행한다.
KAI 측은 "리더십 공백에 따른 위원회 설립은 아니다"라며 "올해 여러 수주 상황과 다양한 잡음이 있었고, 이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하고자 위원회를 발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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