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미분양 해법’이라던 CR리츠…알고보니 시공사의 ‘내돈내산’ 정부 지원으로 시간벌기

2025-05-12

최근 나온 기업구조조정 부동산 투자회사(CR리츠) 1호 사례가 외부 투자자가 참여하지 않은 미분양 건설사의 100% 자회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지방 미분양 해법으로 추진한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CR리츠) 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미분양 건설사의 부실을 이연시키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R리츠에는 정부의 금리와 세제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실패한 부동산 사업을 세금으로 연명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12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CR리츠 1호 사례인 JB자산운용의 ‘제이비와이에스케이제2호CR리츠’가 외부 투자자를 모은 것이 아니라 매입 대상인 수성레이크우방아이유쉘을 시공한 중견 건설사 우방의 100% 자회사로 확인됐다. 이 CR리츠가 모집한 자금 467억원 전액을 우방이 출자했다.

리츠정보시스템을 보면, 이 CR리츠는 공매로 나온 대구 수성구의 ‘수성레이크우방아이유쉘’ 아파트 288가구를 감정 평가액의 83% 수준인 1255억원에 이달 중 매입할 예정이다. 즉, 우방은 직접 시공한 아파트에서 대거 미분양이 발생하자 CR리츠를 설립해 이를 통째로 사들이겠다는 것이다.

CR리츠란, 재무적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미분양 주택을 사들인 뒤 임대로 운영하다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매각하는 투자 상품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현금 흐름이 막혀있던 미분양 시공사·시행사 등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방은 그러나 외부 투자자 없이 100% 자회사로 CR리츠를 설립해 유동성 확보는커녕, 400억원이 넘는 자기자본만 추가로 투입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미분양 해소와 더불어 유동성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CR리츠의 도입 취지나 과거 사례와는 맞지 않는 특수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가 투자자 확보를 위해 CR리츠에 제공하는 금리와 세제 혜택이 이 경우에도 제공된다는 점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CR리츠에 모기지 보증(감정평가액의 70%까지)을 제공해 PF 대출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지원한다. 주택 취득 시 세금도 감면된다. 법인의 취득세 중과세율은 12%지만, CR리츠에는 기본세율인 1~3%만 적용한다. 취득 후 5년간은 종합부동산세 합산에서도 배제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당장 유동성 확보는 어려워도, CR리츠에 주어지는 정부 혜택을 이용해 4~5년가량 버티면 미수금 등 손실을 보전할 수 있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우방 측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와 우방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재 우방은 해당 미분양 주택에 대한 책임준공 기한을 넘겨 1255억원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무를 시행사로부터 떠안은 상태다. 시행사에서 공사 미수금도 받지 못했다. 이대로 미분양 상태를 방치하면 우방은 PF 대출의 높은 이자 비용을 계속 감당하거나, 선순위채권자인 은행이 주택을 경공매로 헐값에 처분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

우방 입장에선 자기자본이라도 투입해 CR리츠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면 기존의 PF 대출을 낮은 이자의 대출로 바꿀 수 있고, 추후 경기가 회복돼 미분양 주택이 팔리기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 결국 정부의 금리·세제 혜택으로 건설사들의 미분양 주택 처분을 지연시키고 손실을 보전해주는 셈이다.

이같은 건설사들의‘내돈내산’ 방식의 CR리츠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우려도 나온다. 부진이 이어지는 건설업계의 숨통을 트여주는 ‘일종의 구조조정’이라고 볼 수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공적 기금으로 특정 기업의 부실 이연을 돕는 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업의 대출 부담을 줄여 도산 위험을 낮춘다는 점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본래 취지는 달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은 “정부가 정책 기금을 통해 이미 실패한 사업을 억지로 연명시켜, 시장의 자체적 정화능력을 저해하고 있다”며 “정부의 저리 대출이 특정 건설사에 대한 지원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면 이 역시 CR리츠의 도입 취지와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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