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공연마다 불거진 ‘관크’
음반·실황공연 감상 논쟁 야기
공연, 관객들과 함께할 때 완전
현장의 위대한 공명, 감동 키워
클래식 공연이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따라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그날의 ‘관크’다. ‘관크’는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로 공연 관람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를 통칭하는 단어다. 대표적으로는 연주 도중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 조용한 악장에서 들리는 비닐봉지 소리, 계속 움직이는 의자 소리, 과도한 기침 등이 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연주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그날의 관람 방해행위가 반드시 언급되곤 한다.
이런 이유로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늘 논쟁이 이어진다. 바로 음반 감상과 실황공연 감상 중 어느 쪽이 더 나은가 하는 문제다. 음반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말 그대로 ‘완벽한 연주’를 경험할 수 있다. 최상의 환경에서 녹음된 음악을,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관람을 방해하는 요소는 전혀 없다. 공연장에서의 감상과는 달리 완벽히 통제된 상태에서 오직 음악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객의 존재는 공연 감상에 있어 단지 방해요소일 뿐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클래식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주지만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함께 나눌 때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혼자 느끼는 감동도 크지만 주변 관객들도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 감동은 더욱 깊어진다.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순간, 음악이 끝난 직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이 흐를 때, 그 분위기 자체가 하나의 감동이 된다. 음반에는 존재하지 않는 실황공연만의 가장 특별한 순간이다.
이런 감정은 누군가와 그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또 다른 감정의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숨 막힐 듯 여리고 섬세한 소리가 연주되는 순간 공연장 안의 모든 관객이 움직임을 멈추고 그 찰나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모두 같은 감정에 잠겨 있다는 사실에 압도된다.
물론 수천 명이 동시에 떠드는 순간 역시 압도적인 에너지를 준다. 웅성거림, 웃음소리, 불규칙한 대화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며 역동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진짜 숨이 멎는 순간은 모두가 동시에 침묵할 때 찾아온다. 수천 명이 말없이 숨을 죽이고 그저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그 순간은 단순한 고요함만은 아니다. 그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공연장을 덮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 없는 감탄, 미동도 하지 않는 뒷모습, 집중하는 눈빛 같은 것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불러온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침묵이 오히려 가장 위대한 공명이 되는 것이다.
또 관객들끼리 서로 감정을 전염시키는 것도 공연장에서만 있는 일이다. 누군가가 앞에서 울고 있을 때,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따라서 눈물이 흐르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감정이 전염되는 이유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공감하도록 설계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뇌에는 거울뉴런이라는 시스템이 있어 타인의 표정이나 행동, 감정을 보면 마치 내가 그것을 직접 겪는 것처럼 반응하게 된다. 누군가 옆에서 울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누군가 웃으면 이유를 몰라도 따라 웃게 된다. 감정이 언어보다 빠르고, 더 깊이 사람들 사이를 타고 흐르기 때문이다. 공연장처럼 감정의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공간에서는 그 전염이 더욱 강하게 작용해 우리를 하나로 연결해 준다. 역시 실황공연의 매력이다.
공연이 모두 종료된 후에도 관객의 존재가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 부분에서 소름 돋았어’, ‘화려한 피날레에 압도되었어’ 같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함께 공유한 경험에 대해 공감하고 또 그 경험을 확장한다. 공연은 음반과 달리 한 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예술이기 때문에 그 순간은 더욱 소중하다. 공연이 끝나도 사라진 소리가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남고, 그날의 감동은 대화를 통해 되살아난다. 그러니 결국 클래식 공연에서 감동의 완성은 관객들이다. 공연이란 것은 관객들과 함께할 때 완전해진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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