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만나고 돌아온 특사들…北, 이튿날 무장간첩선 보냈다

2024-10-07

전두환 비사

제6부 전두환과 북한

3회 특사 교환으로 끝난 남북정상회담

‘청와대 사건(1968년 1·21 사태.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해선 대단히 미안하게 됐다. 내가 박(정희) 대통령이라도 아마 화가 났을 것이다. 내가 지시한 것도 아니고, 몇몇 맹동분자가 저지른 것인데, 그 사람들은 다 철직(해임)시켰다.’(1972년 김일성이 방북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한 사과 발언.)

전두환 ‘아웅산 사건 사과 받아라’

전두환 대통령은 1985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1972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비밀접촉과 비교해 판단했다. 대통령의 목숨을 노렸다는 점에서 아웅산 테러는 1·21 습격과 같았다. 1972년 김일성은 특사 이후락에게 ‘1·21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 비밀접촉 사실이 알려지면서 참모들 사이에서도 ‘최소한 아웅산 사과는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정무적 필요에 정상회담을 추진하긴 하지만 전두환의 속마음도 같았다.

그래서 전두환은 8월 21일 장세동 안기부장에게 ‘북한 특사로부터 아웅산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아라’고 지시했다. 북한 특사가 아웅산 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시해야만 (전두환이) 특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북한 측 요구대로 받아주라’던 적극적 모습과 달랐다. 장세동으로부터 지시를 전달받은 수석대표 박철언은 24일 전두환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아웅산 관련 사과를 받을 수 있는 최대치는, 과거를 잊고 새출발하자는 정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북 접촉에 적극적이었던 박철언은 전두환의 ‘사과 요구’ 수위를 낮추고자 했다. 박철언은 회고록에서 ‘전두환 대통령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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