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성 부부 11쌍이 동성혼을 배제하는 현행 민법의 위헌 여부를 묻고 혼인신고 불수리에 불복하는 취지의 ‘혼인평등소송’을 제기한 지 1년이 지났다. 관련 소송들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는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9개 사건이 정식으로 회부되어 있는 상태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관련 소송을 중심으로 동성혼 법제화와 관련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최근 긍정적인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대만, 네팔, 태국에 이어 일본이 아시아에서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네 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이시카와 다이가 전 일본 참의원(51)은 “이르면 2027년 일본에서도 동성혼 법제화가 이뤄질 것”이라며 “일본에서 동성혼이 가능해진다면 불행해질 사람은 없어도 행복한 사람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지난 7월까지 의정 활동을 한 이시카와 전 의원은 일본에서 게이로 커밍아웃한 후 당선된 정치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당선 이후 동성혼 법제화,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관련 의제에 관해 목소리를 내왔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2023년 당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없는 나라는 과연 행복한 나라인가”라고 질문해 주목받기도 했다.
최근 몇년간 일본에서는 법원에서 동성혼 관련 판결이 이어졌다. 지난해 3월 삿포로 고등법원이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민법과 가족등록법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후, 도쿄·후쿠오카·나고야·오사카 고등법원에서도 같은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이들 사건을 심리 중인 대법원도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이미 고등법원 5개에서 위헌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이를 뒤집는 판결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법원에서 위헌 결정이 나오면 2027년 상반기 정기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을 논의하고 개정안을 처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변수는 급변하는 일본의 정치 상황이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일본도 극우화가 심각한데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극우적 사상을 가진 정치인이 다수 당선돼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전통적 가족관’을 옹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과거 동성혼에도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동성혼과 관련해 종교계의 반대가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한국의 상황은 유사하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최근 여러 보도를 통해 통일교가 동성혼을 반대하라는 압박을 정치권에 가해온 것이 밝혀지고 있다”며 “종교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타인의 행복이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동성혼 등 성소수자 문제는 민주주의, 인권과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동성혼을 인정한 국가들은 대부분 민주주의 선진국이다. 독재 국가 중 동성혼을 인정한 국가는 없다”며 “한국은 지난해 친위 쿠데타(불법 비상계엄)도 겪었고 어찌 보면 일본보다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차별금지법에 관한 입장을 묻자 “민생과 경제가 더 시급하다”고 답했다. 취임 이전인 지난해 10월에는 동성혼 법제화와 관련해 “먹고 사는 문제가 충분히 해결되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이 대통령의 태도가) 안타깝다”며 “성소수자 문제는 일상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최근 일본에서 발표된 연구를 소개하며 “성소수자 친화적인 정책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지난해 일본 후생노동성의 용역으로 수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성소수자가 일하는 직장의 분위기가 포용적일수록 직무 만족도와 직장 잔류 의향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직장 내에서 본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때 업무 능률이 올라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성소수자 당사자’임을 드러낸 정치인이 활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는 성소수자를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생각하거나, 유흥업소에서 근무하는 등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나처럼 정체성을 밝히고 공직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같은 사회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시카와 전 의원은 “동성혼 문제는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본인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의 문제”라며 “자라날 아이들의 인권과 평등한 미래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