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103세 이문성 할머니 가족
4대에 걸쳐 45명으로 번성
매년 4~5차례의 전체 모임
1월 1일에는 한복 입고 세배
깊어가는 한인 이민사 반영
“너무 늦지 말자. 지금 모여서 나누자.”
4대에 걸쳐 총 45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본지에 보내온 신년 메시지라고 하면 의미 있게 다가올까. 72년에 미국 이민 길에 오른 이문성 할머니(103세)는 6명의 자녀와 함께 캘리포니아 드림을 시작했다. 이제 손주 17명(배우자 포함)에 증손자도 17명이나 된다. 대부분 남가주에 거주하는 이 가족은 매년 4~5차례 잔치를 연다. 특히 새해 아침과 추수감사절, 그리고 할머니 생신에는 모두 한복을 입고 모인다. 당연히 가족의 결속은 국가대표 축구팀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장녀인 김연숙(78세)씨는 ‘모인다’보다는 ‘뭉친다’는 표현을 썼다.
“처음엔 이민 온 가족들이 모두 그런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희는 자주 다 함께 모여서 많은 것들을 해왔어요. 지난해는 한국 여행을 모두 함께 했죠. 유대인 사위 덕에 사돈들까지 종종 보면 힘이 솟아나죠.”
이민 전에 남편과 사별한 이 할머니는 자녀들과 쉽지 않은 70~80년대를 겪었지만 여섯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냈다.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할머니의 사랑과 진심은 증손녀 샬롯(8살)에게까지 진하게 전해진 것이다.
이런 사랑은 아이들이 한국의 것을 받아들이는 촉매제가 됐다. 김씨는 샬롯이 자신의 엄마보다 한글을 잘 안다고 귀띔한다. 눈이 잘 안 보일 때 항상 먼저 간판이나 메뉴를 읽어주며 실력을 뽐낸다는 것.
김씨의 첫째 딸 레이첼 김(샬롯 어머니)씨는 가족 결속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망설이다 ‘평범한 비밀’을 내놓는다.
“훌륭한 할머니 덕이죠. 거의 구순이 될 때까지 선교활동을 하셨고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너그러움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던 것이 그대로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전해진 것 같아요. 어떤 선입견도 없이 마음과 문을 열어 환영해주시는 것이 저희에게는 큰 축복이죠. 가족 관계도 갈수록 멀어지는 시대가 됐지만 어른들이 더 베푸는 것이 그 시작점이 아닐까요.”
어머니 김씨는 “굳이 비결이라면 나 자신 최선을 다하며 다른 가족에게 지적하거나 서로를 고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세대가 다르고 개인적인 철학도 다른데 뭔가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면 가족 관계는 유연해질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 가족은 1일 아침 한복을 입고 증조할머니에게 세배를 드렸다. 맛있는 음식에 윷을 던지며 웃음꽃을 피웠다. 가족은 자주 만나서 부대끼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김씨 가족의 철학이다.
한인 사회는 이제 세대교체기에 접어들었다. 1세들의 은퇴, 그리고 차세대의 부상이다. 이문성 할머니 가족의 이야기는 한인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