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릴리 민초들과 부대끼며 사신 분
낮은 자들의 언어와 높임말로 복음
지금 한국 교회, 엘리트주의 만연
그의 소박함과 친근함 담고 싶었다
예수가 2000년 전 갈릴리 지역이 아닌, 전남 해남의 한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만났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아따메 수고가 많으시요이. 거시기 인자부텀 저를 따라 댕기셔야 쓰겄소. 지비들을 물괴기가 아니라 사램을 낚는 찐한 어부가 되게 해드릴텡게.”
신약성서 마가복음을 전라남도 방언으로 번역한 <마가복음 전남 방언>(대한기독교서회)이 나왔다. 남도 사투리로 읽는 성서. 다소 불경스러운 느낌이 들 법도 한 시도를 한 이는 종교·문화계에서 재주꾼으로 소문난 임의진 목사(55)다. 전남 강진 출신인 그가 ‘모어(母語)’로 쓴 신앙고백이자 창조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촌구석에서 민초들과 부대끼며 사셨던 분이에요. 당시 쓰셨던 말도 이 지역의 사투리인 아람어지요. 소위 인텔리가 아닌, 낮은 자들의 언어로 소통하며 복음을 전하셨거든요. 하지만 지금 교회는 엘리트주의가 만연해 있고 사회의 흉기가 되어가고 있잖아요. 젠체하지 않았던, 소박하고 친근하고 가난한 예수님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작가이자 시인인 임 목사는 평소에도 남도 방언을 사전처럼 정리해왔다. 어느 말보다 자유롭고 찰지고 한스럽고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자칫 소멸할 수도 있는 소중한 유산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런 생각이 방언 성서로 연결된 것은 그가 지난해 말 겪었던 비극 때문이다. 전남 무안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에서 그는 누나와 여동생을 동시에 잃었다. 거의 매주 얼굴을 보고 ‘모어’로 소통하던 혈육이 사라진 데서 온 상실감과 고통에 기가 막혔다. “따뜻한 피와 같은 방언을 나누며 함께 살아온 세월들을 이어가보려는 시도였어요. 깝깝한 속이 좀 뚫린 것 같습니다.”
평소 성서를 연구하고 가르쳐온 그가 마가복음을 선택한 이유는 4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된 데다 가난하고 질박한 민초들과 어울렸던 예수의 삶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달리다굼’ ‘아바 아버지’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 등 아람어 방언이 강조되어 있는 것도 마가복음의 특징이라는 것이 임 목사의 설명이다.
일반적인 성서와 달리 제자들을 향해 존대어를 사용해 표현한 것도 눈에 띈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마가복음 16장 15절)라는 구절은 다음과 같이 썼다. “예말이요, 성님 동상님덜. 인자부텀 온 천하에 댕김서 몽조리 만나는 사램들마다 그간 알캐드린 복음을 전하셔야 쓰겄소.”
“전라도에선 유독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성님 동상이라는 말로 마음을 담지요. 게다가 모든 이에게 존중을 몸소 보여준 예수의 삶을 전라도에 대입하면 존칭어를 기본적으로 사용했으리라 상상하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임 목사의 오랜 벗인 홍성담·전정호 작가가 작업한 질박한 목판 삽화도 깊은 감동과 울림을 더한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밑바닥의 생생한 말들을 담아낸다고는 했지만 혹시나 희화화될까 싶은 마음에 수위조절을 한 것도 있다. 이를테면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단도리할 때 ‘말하면 디져분다’ 하는 식의 자연스러운 표현은 살리지 못했다.
“혹시 또 모르죠.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더 드러낼 수 있는 번역을 시도해볼 수 있을지도요. 일단은 이 마가복음을 오디오북과 구성진 판소리로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는 이달 30일 광주에서, 다음달 26일엔 서울에서 북콘서트를 이어간다. 다음달 25일부터는 서울 인사동에서 책에 실린 삽화와 방언 성서 구절 등을 표현한 삽화전을 개최한다. 그가 작업한 판화 작품들도 함께 선보인다. 목사이자 작가, 시인, 앨범을 여러 장 낸 뮤지션이자 음반기획자. 여기에 대안학교장, 갤러리 관장, 화가, 문화운동가 등 경계와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외국 친구들은 저를 ‘이매진’이라고 불러요. 제 이름과 비슷해 지은 영어이름인데 제 정체성에 잘 들어맞는 것 같아요. 그간 현실성 없다는 핀잔을 많이 듣고 살았는데 상상하지 못하고 사는 삶이 얼마나 메마르고 삭막한가요. 상상하고 꿈꾸는 삶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위로할 수 있다고 믿어요. 예수님도 그렇게 사신 분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