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러시아에 전투 병력을 파병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중동 분쟁 역시 잦아들 기미는 커녕 오히려 격화하는 모양새다. 세계 패권을 쥔 미국은 최근 정강정책에 동맹·우방국들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면서 많은 국가들이 앞다퉈 국방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예정에 없던 전투기·군함 도입 사업 추진 소식이 들리고, 글로벌 방산 기업들은 수주 경쟁에 한창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방산기업들도 우후죽순 쏟아지는 무기 수요에 연이은 수주 낭보를 올리며 호실적을 내보이고 있다. 시장에선 세계적인 국방비 확장 기조에 우리 기업들의 올해 연간 합산 영업이익이 2조원을 넘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와 천무 미사일, LIG넥스원의 천궁 등이 폴란드·호주·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로 연이어 수출되며 영업이익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현대로템도 전투기, 전차 등을 앞세워 호실적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방산업체 관계자들의 분위기는 마냥 축제 분위기는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업계는 국내 업체들 간 '집안싸움'을 우려하고 있었다. 천궁-Ⅱ 수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계약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내 업체 간 과열 경쟁 때문이다.
KDDX를 두고 국내 업체간 벌이고 있는 분쟁이 '집안싸움'의 대표적인 사례다.
6000t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순수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KDDX 사업자 선정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공방으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마지막 남은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두 업체가 법적 다툼까지 벌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가져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고,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이 기밀유출 사건으로 보안 감점을 받은 만큼 경쟁 입찰로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엔 천궁-Ⅱ의 이라크 수출을 두고 LIG넥스원과 한화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LIG넥스원은 지난 9월 이라크 국방부와 3조7135억원 규모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천궁-Ⅱ는 LIG넥스원이 미사일과 통합 체계를, 한화시스템이 레이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대와 차량 생산을 책임진다. 그렇다보니 양측이 납기와 가격에 대한 사전 합의가 필요했는데 이 과정이 생략됐다는 것이 문제로 불거졌다.
한화 측은 LIG넥스원이 납기와 가격에 대한 사전 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한다. LIG넥스원은 계약을 앞두고 한화 측에 검토를 요청했지만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폴란드가 약 3조4000억원을 투자해 디젤 잠수함 3척 건조를 추진 중이 '오르카 프로젝트'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각각 입찰에 참여했다. 수주에는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각국 조선사 11개사가 참여했는데 한 국가에서 협력체계 없이 참여한 건 우리뿐이다.
물론 능력이 된다면 개별적으로 참여해도 괜찮지만, 타 업체들이 팀워크를 발휘할 때 우리만 그렇지 못한 모습은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업계 일각에선 집안 싸움하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향후 캐나다 순찰 잠수함 프로젝트나 필리핀의 중형급 잠수함 도입 사업 등에서도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단 우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는 아직 시작도 안 한 다음 사업을 두고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우리 군은 한국형 사드로 불리는 L-SAM 2(엘셈)의 개발을 준비 중이다. 체계 개발을 위한 공고가 곧 발표될 예정으로, 한화와 LIG넥스원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는 앞서 무인수상정, 천궁 등으로 얼굴을 붉힌 경우가 있다"면서 "그럴 일이 없겠지만 또다른 싸움이 이어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음 사업에 대한 공고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또 싸움으로 얼굴 붉힐 것을 걱정하는 게 방산업계의 현실이다.
어느때보다 잡음이 심한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중재자는 이미 존재한다. 갈 수록 복잡해지는 이해관계를 푸는 건 방위사업청의 몫이다. 방사청은 이를 일종의 경쟁으로 여기며 깊게 관여하지 않는 모습이지만, 과열되는 경쟁이 곧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
K-방산은 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 받으며 고공행진만을 앞두고 있다. 지금이야 말로 전면에 나서 잡음을 해소하고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중재자로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면서 향후 시비나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겠지만, '결자해지' 마음으로 이제는 고민을 내려두고 나서야 한다. 장고는 악수를 두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