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한 여성(케리 워싱턴)이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켭니다. 머리와 화장, 옷매무새를 잠시 가다듬더니 곧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여러분, 오늘은 나도 모르게 관계를 망치는 것에 관해 얘기해볼게요. 바로 ‘반복 강박’이라는 것이죠.”
여성의 이름은 페이지. 관계·인생 상담 코치이자 싱글맘입니다. 사춘기인 아들 핀과 살고 있습니다. 인간 관계 팁을 전수하던 페이지의 자신감 넘치던 얼굴은 방송 뒤 불안으로 가득찹니다. 그럴 만합니다. 오늘은 마약상 아버지 에드윈(델로리 린도)가 17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하는 날이거든요.
<아빠가 풀려났다>는 평생 감옥을 들락거린 아버지와 딸 페이지가 함께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밥 먹듯 징역을 산 아버지와 딸의 동거가 순탄할 리 없습니다. 페이지에게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것이 큰 상처입니다. 대부분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아버지 덕분에 그는 여러 위탁 가정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나마도 페이지를 가장 긴 기간 돌본 것은 아버지와 함께 범죄를 저지른 여자친구였고요. 페이지가 평범하게 살아보려 애쓰는 에드윈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타인에겐 관계와 인생에 대해 조언하는 페이지도 자기 상처만큼은 어쩌지 못하는 거죠.
드라마는 에드윈과 페이지, 손자 핀이 함께 지내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을 재치있게 그립니다. 평생 합법적으로 돈을 벌어본 적 없는 에드윈은 요리사, 중고 매장 판매원, 아이스크림 장사 등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합니다. 세상은 이제 막 출소한 60대 흑인 남성에게 자주 차갑지만 에드윈은 특유의 쾌활함으로 극복해나갑니다. 극복은 에드윈 만의 과제가 아닙니다. 페이지 역시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을 통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조금씩 이겨냅니다. 페이지가 자신의 상처와 마주할 때마다 그 안의 ‘어린 페이지’가 등장하는데, 이 장면이 유머러스하면서 참 귀엽습니다.
편당 길이 30분, 가볍게 보기 좋은 이 드라마는 가족과 트라우마, 성장과 같은 키워드를 유쾌하게 풀어냅니다.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즐거워 ‘밥 친구’ 삼기에도 좋고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저에겐 드라마 속 미국 사회의 독특한 시스템이나 사회 전반에 깔린 긴장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에드윈은 취업에 필수인 사회보장번호를 받기 위해 ‘출생증명서’를 떼러 고향 남부까지 직접 가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 분투하는 페이지나 사춘기를 통과 중인 손자 핀에게 인종 문제는 언제나 은은하게 깔려있습니다.
<아빠가 풀려났다>는 지난해 3월 첫 시즌이 공개된 데 이어 최근 두 번째 시즌까지 선보였습니다. 호평에도 불구하고 시즌 3 제작은 무산됐다고 합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밥 친구’ 지수 ★★★ 편당 30분, 밥 먹을 때 틀어보세요
‘의외의 재미’ 지수 ★★★ 유쾌하게 들여다보는 미 중서부 흑인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