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중화민족주의에 옅어지는 조선족 정체성
연변조선족자치주 가보니
정체불명 한복 차림 관광객 몰려들고
조선족 음식이라며 떡볶이·어묵 판매
한국 문화와 뒤섞여 본연의 색채 상실
민족 정체성 갈수록 약화
‘한자 우선’ 정책에 한글 간판 밀려나고
거리 곳곳 ‘중화민족’ 강조하는 조형물
관례 깨고 연변大 학교장 한족 임명도
지난달 28일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의 중국조선족민속원. 영하 10도에 가까운 추운 날씨였지만 사진사를 대동한 관광객들은 저마다 한복을 표방한 듯한 옷을 차려입고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 색동저고리처럼 전통 한복과 비슷한 느낌을 내는 옷이 보였으나 대부분은 국적 불명이었다. 장난감 칼을 차고 다니는 남성들의 복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복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렇다고 중국의 한푸(漢服)도 아닌 것이 넓게 보면 퓨전 한복쯤으로 볼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조선족민속원은 이름부터 ‘민속원’인 만큼 한옥 단지마다 대장장이, 조선족김치체험관 등의 테마가 갖춰져 있었다. 씨름판, 투호놀이 등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지만 관광객 중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얀 모래가 배경으로 적절했는지 깔린 씨름판은 사진의 배경으로 쓰였고, 김치체험관에도 김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산둥성에서 왔다는 20대 리(李)모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보고 (연길에) 오게 됐다”며 “한국 여행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조선족문화원은 조선족 문화보다는 한국 문화에 더 가까운 것들이 많았다. ‘조선족음식’이라고 적힌 길거리 매장에서 떡볶이와 어묵 등을 파는가 하면 한국에서 인기 있는 네 컷 사진 부스도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내 지역들을 돌아본 결과 ‘조선족 문화’는 힘을 잃고 있었다. 여기에 최근 ‘중화민족’을 강조하며 소수민족의 전통 지우기에 들어간 중국 당국의 정책에 앞으로 점점 조선족은 정체성을 잃고 중국으로 편입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문화가 조선족 문화? 정체불명 풍경
연변대학 앞 ‘한궈창’(韓國墙)은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작은 서울’로 유명한 곳이다. 사진사들과 정체불명의 한복 차림을 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건물은 한글로 쓰인 간판 수십개가 붙어 있는데, 애초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었지만 유명 인플루언서가 다녀가면서 한국 드라마 배경 같다는 소문을 타고 ‘한국의 벽’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한궈창 내 ‘한국식 포차’에 들어가니 한국 노래가 연이어 나왔고, DJ가 다른 음악을 틀자 테이블의 모니터에 “K팝을 틀어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한궈창에 앞서 북·중 접경지역인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의 두만강변을 찾았다. 두만강광장 인근의 86호·87호 중·조(북·중) 경계비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북한 남양시를 바라보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과 반대로 광장 내 ‘중국조선족 비물질문화(무형문화) 전시관’은 텅텅 비어 있었다. 방문객은 기자 한 명뿐으로, 그 덕에 한국어가 서투른 한족 직원의 일대일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전시관에는 장구춤, 사물놀이와 같은 전통음악·무용과 악기부터 각 절기의 세시풍속 등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이 전시돼 있었다. 안내를 맡은 직원은 “이 부채춤은 1000여년 전부터 조선족에 전승된 것이다” 같은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을 이어갔다. 1000년 전 동북 지방은 거란족의 요나라가 지배하고 있었다. 조선족의 직계 기원을 보통 1800년대 간도로 이주한 조선인들에게서 찾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조선족 문화에서는 씨름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황소를 상으로 준다”거나 “한국에도 장구가 있느냐”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는 모습도 보였다. 전시관 내부의 설명자료는 ‘조선족’이라는 표기를 ‘한국’으로 바꾸기만 하면 그대로 이해가 되는 정도였다. 옆 전시관의 ‘도문시 고대역사 유물전시’ 코너에 기록된 “속말말갈 수령 대조영이 돈화시 구역에 도읍을 앉히고 당조의 책봉을 받았다”는 ‘당대발해국시기’ 설명 문구도 거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조선족의 뿌리는 한민족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점도 있었다. 전시관을 안내하던 직원은 물동이를 머리에 일 때 머리에 얹는, 짚으로 된 똬리를 들어보이며 자신은 어릴 때 이걸 보며 조선족 여성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똬리를 머리에 얹어 물동이를 이고, 등에는 아이를 업은 채 무거운 짐까지 손에 들고 다니는 조선족 여성의 생활력에 감탄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그 뒤 “한국에도 이런 것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중국이 이렇게 한국에서 기원한 문화를 통틀어 ‘조선족 문화’로 편입시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역사의 동북공정과도 궤를 같이한다. 한국 문화가 당연히 조선족으로 전해졌음에도 조선족은 중국 소수민족이니 중국의 문화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 등 중국에서 개최되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는 ‘조선족 한복 논란’도 이런 맥락에서다.
◆인구 감소·중화민족 강조에 흐려지는 정체성
“중국이 조선족을 내세워 한국 문화를 자기 것이라 우긴다”는 비판과 “중국 소수민족이 소수민족 복장을 입는 게 무슨 문제냐”는 주장이 대립하는 것과 별개로 조선족의 정체성은 날로 약화되고 있다.
중국 내 거주하는 조선족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제7차 중국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중국 내 조선족 인구는 170만2479명이었다. 중국 인구 센서스는 약 10년 주기로 실시하는 중국의 인구 조사로, 조선족 인구는 2000년 최고치를 기록한 뒤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조선족 인구는 1953년 제1차 센서스 때 112만405명, 1964년 2차 센서스 133만9569명, 1982년 3차 센서스 176만5204명, 1990년 4차 센서스 192만579명을 기록하고 나서 2000년 5차 센서스에는 192만3842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한국 등 해외로 조선족이 대량 유출되면서 인구가 줄기 시작해 2010년 6차 센서스에는 183만929명으로 감소했으며, 10년 만에 또다시 12만8450명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호구(호적)를 중국에 둔 채 한국으로 와서 일하는 조선족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인구는 더 적을 것으로 추산된다.
본질적인 문제는 중국 당국이 ‘중화민족’을 내세우며 소수민족 정체성 희석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국경지대에 표준어인 푸퉁화(보통화·만다린) 사용을 확대하고 전국적으로 통일된 국가 편찬 교과서 사용을 늘리도록 지시했다. 실제로 연길, 도문, 용정 등 연변조선족자치주 각 지역 주요 지점을 방문했을 때에도 ‘여러 민족은 중화민족대가정에서 석류알처럼 굳게 뭉치자’, ‘사회주의현대화강국 전면 건설에는 어느 민족도 빠져서는 안 된다’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석류알’은 시 주석이 민족 단결을 강조하며 자주 써온 표현으로,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용정시 명동학교 옛터와 도문 북·중 접경지 등에는 석류와 옹기종기 모인 석류알을 표현한 조형물도 볼 수 있었다.
앞서 중국 정부는 2022년 ‘조선 언어문자 공작 조례 실시세칙’을 공포·시행하면서 국가 기관·기업·사회단체·자영업자들이 문자를 표기할 때 한자를 우선적으로 표기하도록 명시했고, 이 세칙에 부합하지 않는 현판과 광고 등 표지판은 교체하도록 했다. 연변은 물론 랴오닝성 선양, 단둥 등 조선족이나 한국인 밀집 거주 지역에서는 한글을 앞에 쓰고 중국어를 병기하는 식의 간판을 주로 사용했지만 반대로 한자를 앞이나 위에 쓰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 연변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안내한 조선족 가이드의 단골멘트였던 “여기 연변에서는 어딜 가나 우리말로 된 간판을 먼저 볼 수 있습니다”라는 말도 옛말이 되고 말았다.
1949년 소수민족 우대 정책에 따라 연길에 세워진 연변대학의 학교장은 조선족이 맡는 것이 관례였는데, 지난해 학교장에 한족이 임명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선족 원로는 앞서 네이멍구자치구에서 소수민족 교육 축소 방침에 항의가 잇따랐던 것을 언급하며 “조선족은 정부 시책에 지나치게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연길·도문·용정=글·사진 이우중 특파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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