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명의 부작용, 방치하면 안 된다

2024-09-19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딥페이크 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여성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뜨리는 행위는 피해자에게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준다. 그런데 이런 범죄가 한국에서 가장 극성을 부린다. 미국의 한 사이버 보안업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작년 7~8월에 전 세계에 유통된 딥페이크 성 착취물 피해자의 53%가 한국 여성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프라가 잘 되어있다는 점, 새로운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는 점, 그리고 사이버 성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 등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딥페이크 같은 유해 콘텐트 범람

소셜미디어 청소년 정신건강 위협

해외에선 플랫폼에 책임 묻는 추세

우리도 포괄적 대책 속히 마련해야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가짜뉴스들도 소셜미디어를 통하여 범람하고 있다. 특히 불순한 세력들이 가짜뉴스를 이용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위협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문명의 부작용이 심각하게 드러나자 세계 각국에서는 법적인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올 2월부터 ‘디지털 서비스법’을 시행하여 플랫폼 기업에 불법·유해 콘텐트 및 가짜뉴스 확산을 막는 책임을 부과하였다.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 항소법원은 틱톡에서 유행한 ‘기절 챌린지’로 10세 딸을 잃은 미국 여성이 제기한 소송에서 위험한 게임을 방치한 틱톡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한국에서도 뒤늦었지만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법률안들이 국회에 제출되었다고 한다.

물론 디지털 범죄를 방지하고 처벌하는 법과 제도는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문명의 부작용은 사이버 범죄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심각한 것은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다. 최근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불안세대』라는 책에서 2010년대 초반 서구 10대 청소년들의 우울증 발생 빈도가 인종이나 사회 계층과 관계없이 2.5배 증가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 원인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세대 청소년들에게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브랜드’ 관리가 필수적이 되면서 직접 친구들과 부딪치는 놀이문화 대신 스마트폰 기반의 가상세계가 사회 활동의 주 무대가 되었는데, 이 가상세계에서는 타인과의 비교가 쉽고, 특히 완벽하게 보정된 타인의 사진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전체적인 불안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의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위기에 대해서 미국 보건당국도 나섰다. 미국의 의무총감(Surgeon General)인 비벡 머시(Vivek H. Murthy) 박사는 올 6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담뱃갑에 건강에 대한 경고 문구를 붙이듯 소셜미디어에 그 부작용에 대한 경고 문구를 의무적으로 붙일 때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청소년들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지나친 사용을 조장하는 푸시 알림이나 자동 재생 같은 기능도 제한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물론 빅테크들의 강력한 영향력을 생각할 때 머시 총감의 제안이 당장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미국 의무총감은 과거 담배 회사들의 강력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담뱃갑에 경고문을 붙이는 데 성공한 역사가 있다.

머시 박사의 제안에 부응하여 미국 41개 주 법무장관들은 소셜미디어에 “청소년 건강에 유해하다”는 경고문을 달게 하는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서한을 의회에 보냈다. 세계의 몇몇 정부도 청소년들을 소셜미디어 중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호주의 앤서니 앨버리지 총리는 최근 “연내 어린이가 소셜미디어 계정을 개설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할 것”이라며 “연령제한 기준은 14~16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도 “소셜미디어 사용 연령을 15세로 제한해야 한다”고 유럽연합(EU)에 제안한 바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압박을 느낀 빅테크들도 최근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틀 전 인스타그램은 10대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태연하다. 사실 청소년들의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중독은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되는 데도 말이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화사회진흥원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10~19세 청소년 10명 중 4명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으로 나타났고, 심지어 3~9세의 유·아동도 4명 중 1명이 위험군에 속해 있다고 한다. 한국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조사기관에 따라 들쭉날쭉하지만 주 중에는 4.7시간, 주말에는 6.6시간이라는 조사도 있다(이동훈 교신저자, 대한안과학회지, 2023). 미국의학협회에 따르면 하루에 3시간 이상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청소년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2배로 높아진다고 하는데,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정신건강이 심각히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속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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