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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농구 생태계가 위태롭다. 국제무대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국내 평균 득점마저 점점 떨어진다. 여자농구는 침체기에서 벗어나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2024~2025시즌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아산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은 지난 24일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여자농구의 현실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위 감독은 지도상을 수상한 뒤 마이크를 잡고 “한국 여자농구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적도 있는데 지금은 국제대회에서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라며 “여자농구가 침체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도자들도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라며 “선수들이 선배들의 길을 따라 조금 더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국 여자농구대표팀의 마지막 국제대회 수상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다. 당시 한국은 준결승에서 만난 일본에 58-81로 크게 지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최종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으로 범위를 좁히면 1984년 LA 대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LA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래 30년 넘게 한국은 메달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한국은 올림픽 최종예선 진출권이 걸린 2023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컵 4강 진출 결정전에서 호주에 27점 차이로 패배해 파리행에 실패했다.
여자농구 국내 리그의 현실도 녹록지 않다. 전날 열린 정규리그 시상식에서는 우리은행 김단비가 만장일치 MVP를 포함해 8개의 상을 휩쓸었다. 김단비는 이번 시즌 6개 라운드 중 4개에서 라운드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는 리그에 ‘절대 강자’ 김단비에 대적할 새로운 에이스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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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에이스에 의존하는 리그는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WKBL은 이미 리그 최강 센터 박지수의 해외 진출로 인한 후폭풍을 크게 겪었다. 청주 KB의 골 밑을 호령하던 박지수가 튀르키예 리그로 이적하자 KB의 정규리그 평균 득점은 2023~2024시즌 72.7에서 2024~2025시즌 59.3점으로 10점 이상 줄었다. 박지수와 김단비, 김소니아, 진안 등이 경합했던 라운드 MVP는 박지수의 부재와 각 팀의 더딘 세대교체로 인해 김단비 중심으로 재편됐다.
리그 평균 득점은 시즌을 거듭하며 꾸준히 줄고 있다. 2021~2022시즌 71.27점이었던 정규리그 평균 득점은 2022~2023시즌 69.22점, 2023~2024시즌 66.35점을 거쳐 이번 시즌에는 60.53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KB와 우리은행의 경기에서는 전반전을 23-16으로 끝내며 역대 리그 전반전 최소 득점 3위를 기록했다. 우리은행은 인천 신한은행과의 경기에서 1쿼터 0득점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쓰기도 했다.
손대범 해설위원은 “경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돌아가게 할 스타 플레이어들이 부족하다”라며 “선수 풀이 너무 적은 데다가 경기 일정도 타이트하다 보니 주전급 선수들이 충분히 회복하지 못하고 30분 이상 뛰게 된다”라고 말했다. 손 해설위원은 “지난 1~2년간 득점을 책임져 온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했고 박지수 선수와 박지현 선수는 해외에 진출하면서 리그가 과도기를 맞은 것 같다”라며 “엘리트 교육을 받고 프로로 넘어오는 선수가 줄고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김은혜 해설위원은 “지난 시즌에는 박지수와 박지현 등 득점 옵션이 확실하게 있다 보니 그로부터 파생되는 움직임을 노릴 수 있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우리은행 김단비를 제외하면 확실한 공격력을 가진 선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 해설위원은 “김단비 이후 세대를 이끌어가는 선수가 박지수, 이소희, 박지현, 이해란 등인데 그중 두 명이 이탈하니 선수층이 많이 빈다”라며 “새로운 선수가 잠재력을 터트려줘야 하는데 그런 인재가 부족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번 시즌을 ‘단비 천하’로 만든 에이스 김단비는 전날 시상식 후 기자회견에서 여자농구의 발전 방안에 대해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그는 “선수들이 예전보다 편안한 농구를 추구하는 것 같다”라며 “‘헝그리 정신’이 조금 없어졌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단비는 “우리는 결국 몸으로 하는 직업이니만큼 연습을 많이 하면서 기본기부터 다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라며 “프로라면 편하게 하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구렁텅이에 빠져들 만큼 스스로 힘든 걸 찾아서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