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관세 장벽의 쓰나미를 목도하고 있고, 경기침체 상황은 지속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정부는 ‘K’로 시작하는 각종 이니셔티브로부터 기회를 찾고 싶은 듯하다. 지난 10월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K팝에서 시작해서 K드라마, K무비를 넘어서 이제는 K푸드, K뷰티, K데모크라시까지 세계가 대한민국을 선망하고 있다”면서 “문화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는 종합적 대책 수립”을 주문했다. 2030년까지 “K컬처 시장 규모 300조원, 문화 수출 5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대선 공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년도 영화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669억원(80.8%) 많은 1498억원으로 증액한 것 역시 이런 맥락 때문일 것이다.
지난 4월 사모펀드 운용사 에이티유파트너스와 벤처투자회사 미시간벤처캐피탈은 1630억원 규모의 콘텐츠 전용 펀드를 결성하겠다고 밝혔다. 굵직굵직한 제작사들의 경우, 내로라하는 사모펀드들로부터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모펀드는 몇 년 내 투자금 회수를 목표로 하므로 이야기의 실험성이나 사회성, 혹은 창작 인프라 구축보다는 즉각적인 흥행과 IP 매각 가능성이 큰 프로젝트, 수직계열화된 대형 제작사에 집중한다. 이는 다양성의 소멸과 노동조건의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K콘텐츠 육성’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생태계를 폐허로 만드는 일, 사모펀드나 다를 바 없는 기준으로 정책 기조를 세우고 있다. 독점과 천편일률성을 ‘K컬처’의 기조로 잡은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사모펀드니 ‘그러려니’ 한다. 문제는 정부다. 이 대통령의 시선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어딘가 붕 떠 있다. 해마다 충무로에서 만들어지는 상업영화 제작 편수는 줄어들고 있고, 영화관에 가는 관객의 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올해 상반기 극장 관객은 지난해보다 2000만명 넘게 감소했다. 배우들의 높은 출연료는 전체 제작비를 천문학적 수치로 올렸고, 자연스레 이는 K드라마와 영화 산업 붕괴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K컬처’란 대체 뭘까?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이 크게 늘었지만, 내년도 독립예술영화 지원 예산은 올해(230억1500만원)보다 6억3500만원 줄어든 223억8000만원으로 책정됐다. 3년 연속 삭감이라는 점에서 볼 때, 윤석열 정부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K콘텐츠 육성’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생태계를 폐허로 만드는 일, 사모펀드나 다를 바 없는 기준으로 정책 기조를 세우고 있는 셈이다. 독점과 천편일률성을 ‘K컬처’의 기조로 잡은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K드라마나 영화의 세계적 부상은 1990~2000년대 공공투자와 영화진흥 제도의 결실이다. IMF 이후 정부는 독립·예술영화, 실험적 장르, 지역 영상거점에 대한 공적 지원을 확대했고, 다양성을 위한 기반은 생태계를 확장했다. 새로운 서사와 실험, 사회적 문제의식을 다루는 지역·독립·예술 영화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는 것은 문화정책을 ‘문화 없는’ 산업정책으로 완전히 전도시킨다. 이런 방향은 운 좋게 잘되면 단기적 수출 성과를 내겠지만, 결국 국내 창작 기반을 붕괴시키고 문화의 다양성을 고사시킬 것이다. 창작의 기반이 무너진 K드라마와 K시네마에 미래는 없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