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비용·고효율 AI 모델을 앞세운 중국계 AI 기업 ‘딥시크(DeepSeek)’의 출현이 글로벌 인공지능(AI) 생태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오픈소스를 내세운 개방 전략은 오픈AI, 구글, 앤트로픽 등 폐쇄형 생태계를 유지해 온 기존 선두 그룹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의 핵심에는 ‘지식증류(Knowledge Distillation)’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지식증류는 대형 AI 모델(교사 모델)의 응답을 기반으로 소형 모델(학생 모델)을 훈련시키는 방식으로, 모델 개발 비용을 줄이면서도 정밀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딥시크의 AI 모델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형 모델의 응답 데이터를 무단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지식재산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AI·암호화폐 정책 자문역에 임명한 데이비드 올리버 삭스는 “딥시크가 미국의 지식재산을 도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의혹에 불을 지폈다. 이에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식증류와 관련한 법적·기술적 쟁점을 분석하고, AI 반도체 개발 환경과의 연관성을 조명했다.
보고서는 현행 저작권법상 AI 간 문답은 사람의 창작 개입이 없는 기계 간 자동화된 행위이므로 저작물로 보호받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또한 AI 응답이 매번 달라 체계적 배열이 되지 않으므로 데이터베이스로서도 보호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특정 조건에서는 지식증류 방식이 ‘부정경쟁방지법’상 성과도용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명섭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AI 모델 학습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가 고갈되고 있는 가운데, 지식증류는 이를 해결할 대안이 될 수 있다”며 “AI 혁신과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식증류의 범위와 법적 한계를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 대형 모델 개발사들이 지식증류를 제한하는 이용약관을 내세우고 별도의 라이선스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지식증류 기술이 AI 산업의 혁신 도구가 될지, 혹은 새로운 법적 분쟁의 불씨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헬로티 임근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