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란 뿌리처럼 간절한 것이어서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팔려간 제 새끼를 부르는 새벽녘 어미소처럼
애원의 목덜미에 주름을 새기는 것
<감상> 디카시는 프로슈머prosumer 문학이기 때문에 문학성 못지 않게 실용성도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한 고전문학자의 글에 디카시 각주달기, 혹은 디카시 밑줄긋기 차원의 콜라보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녁[夕]에 입[口]이 달렸다. 저녁에 입으로 부르는 것이겠다. 글자에 이미 이름을 부르는 ‘呼名’이 숨어 있을 법하다. 날이 훤할 때, 그때는 얼굴이 바로 그 사람이다. 아하, 너로구나. 그저 눈으로 쓱 보면 곧 식별이 가능할 터이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면 그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이름이다”와 같은 이름 명(名)자에 대한 원작자의 ‘한 글자 한 생각’ 에세이의 맥락, 그 적정한 곳에 서너 차례 참여하는 형식입니다.‘뿌리’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단 하나’를 실감하게 하는 감각적 실체로서의 각주이고, ‘애원의 목덜미’는 ‘이름 부르기’의 간절함 강화를 위한 밑줄긋기인 셈이지요. 시와 산문의 대화를 통해 글의 질감을 살릴 수 있다면, 한 글자 한 생각을 넘어 ‘한 글자 두 생각‘의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의미 있는 콜라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