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을 필두로 하는 유럽연합(EU) 집행부가 다음달 1일 공식 출범한다. 이전보다 한층 보수색이 짙어진 폰데어라이엔 2기 집행부는 앞으로 5년간 보호주의적 경제‧산업 정책을 강화할 것을 예상된다.
유럽의회는 27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본회의에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27명의 집행위원단에 대한 표결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재적 의원 688명 가운데 370명이 찬성하고, 282명이 반대, 36명이 기권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한국의 대통령, 집행위원들은 장관·국무위원, 집행위원단은 국무회의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집행위원들은 국회의 교섭단체에 해당하는 정치그룹에 속해있는데, 폰데어라이엔 2기 집행위원들은 폰데어라이엔 본인을 포함해 전체 절반이 넘는 집행위원 14명이 중도보수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에 속해 있다.
또 보수 성향의 유럽을위한애국자(PfE)와 유럽보수와개혁(ECR)도 각 1명씩 집행위원을 배출했다. 이 때문에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대처를 전면에 내걸었던 폰데어라이엔 1기에 비해 산업과 안보 중심으로 정책의 중심축이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폰데어라이엔은 이날 연설에서 새 지도부의 정책을 ‘경쟁력 나침반’(Competitiveness Compass) 이니셔티브로 소개하며 “미국, 중국과 혁신 차이를 줄이고 안보와 독립성을 강화하며, 탈탄소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는 “유럽의 그린딜을 달성해야한다”면서도 “(유럽의) 자동차 산업이 심각한 변화를 격고 있다. 유럽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관한 전략적 대화를 소집하겠다”고 했다. 이는 유럽연합의 급격한 탈탄소 정책으로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중국에 내줬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관련한 행보로 분석된다.
국방 분야 투자 확대도 예고했다. 폰 데어라이엔은 “유럽의 안보가 항상 최우선 순위”라며 “(우크라이나, 중동 전쟁과 관련해) 유럽이 더 큰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는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9%를 국방 분야에 지출하는 데 EU는 평균 1.9%에 불과하다”며 “집행부 출범 100일 이내에 ‘유럽 방위의 미래’에 관한 백서를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집행위원단에는 방위·우주담당 집행위원직이 신설돼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 전 리투아니아 총리가 임명됐다.
폰 데어라이엔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유럽 언론은 폰 데어라이엔이 연설에서 “유럽의 경제 안보”를 거듭 강조한 대목을 트럼프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했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너차이퉁(FAZ)은 이와 관련해 폰데어라이엔 2기 집행부가 “자유 무역이 아니라 유럽의 전략적 이익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진보 성향인 영국 가디언은 “유럽현대사에서 가장 우경화된 유럽의회”라며 “폰데어라이엔 역시 연설에서 유럽의 경제와 안보를 강조했을 뿐, 기후나 유럽의 환경이 직면한 위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