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장난감에 두번째 꿈을…울산 '코끼리공장'의 착한 도전

2025-09-09

버려지는 장난감을 모아다 고쳐 다시 아이들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착한 장난감 공장'이 있다. 울산의 코끼리공장이다. '장난감 의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채진(41) 대표가 이끄는 이곳은 장난감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특별한 현장이다.

지난달 27일 찾은 울산 중구 코끼리공장. 출입문을 열자 눈앞에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인형과 로봇, 바퀴가 빠진 소방차, 부서진 주방놀이 세트 등 만신창이가 된 장난감들이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겉으로 보면 폐기물 더미 같지만, 이곳에서 모두 다시 아이들의 품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공장 내부 한쪽에는 수리를 마친 로봇 장난감들이 전시돼 있었다. 버려진 장난감 부품으로 만든 지구본·소나무 모형 같은 '정크아트'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한편에서는 은퇴한 어르신이 장난감을 분류하고 손질하기에 분주했다. 코끼리공장은 하루 평균 2t가량의 버려진 장난감을 받아들인다. 가정이나 어린이집, 기업 단체, 아동시설 등에서 한꺼번에 기부가 들어오면 금세 톤 단위로 불어난다고 한다.

코끼리공장에서 장난감의 운명은 둘로 갈린다. 고칠 수 있는 장난감은 분해·세척·소독을 거쳐 새것처럼 재탄생한다. 손쓸 수 없는 장난감은 파쇄돼 플라스틱 원료로 쓰인다. 플라스틱 원료는 석유화학업체에 납품돼 재활용된다. 새로 고쳐진 장난감은 국내외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주어진다. 매년 6만여 개는 국내 아동시설과 저소득 가정 등으로, 3만여 개는 국내외 봉사단체를 통해 스리랑카·방글라데시·몽골 오지마을과 시리아 난민 캠프 등으로 향한다.

코끼리공장을 만든 이 대표는 울산대에서 아동가정복지학을 전공한 뒤 어린이집 교사로 1년간 근무했다. 이후 울산시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장난감 대여 업무를 담당하면서 아이들과 맞닿은 현장을 경험했다. "금세 망가지고 버려지는 장난감을 지켜보며 고민이 들더군요. 고쳐서 다시 쓰면 어떨까 하구요." 그는 2011년 지인들과 함께 봉사단인 '아빠 장난감 수리단'을 결성했다. 상가 주택 한쪽에서 10여명이 모여 고물 장난감을 소독하고, 페인트를 칠해 고쳤다. "아이들이 다시 장난감을 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순간 이게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봉사단은 2014년 코끼리공장으로 거듭났고, 이후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며 본격적인 도전에 나섰다.

공장 동력은 은퇴자들에게서 나온다. 현재 20여명의 직원과 함께 100여명의 어르신이 급여를 받으며 장난감 수리에 참여한다.

코끼리공장의 도전은 울산을 넘어 확산하고 있다. 부산시는 2022년 '우리동네 ESG센터'를 세워 장난감 순환사업을 코끼리공장과 연계했다. 서울시 디자인재단 등 시 지원 단체와 함께 이달부터 서울새활용플라자에 '서울형 코끼리공장'을 시범 운영 중이다.

해외 관심도 높다. 파라과이·인도네시아·태국 관계자들이 공장을 찾아 장난감 재활용 등 방법을 배우고 갔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코끼리공장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자원순환 모델'로 평가했다. 이 대표는 장난감 봉사를 인정받아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 2022년 고용노동부·환경부 장관상, 2023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 대표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놀이만큼은 빈부 격차가 없어야 합니다. 더 많은 아이가 장난감을 통해 웃고, 지구 환경을 지킬 수 있도록 코끼리공장을 세계로 확산시키는 게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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