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창업 생태계를 숫자로만 훑어도 동아시아의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전 세계 유니콘은 1300여개를 넘어섰고, 중국은 약 340개로 미국에 이어 2위를 굳혔다. 홍콩 증시는 2025년 들어 상장 건수와 조달액이 뚜렷이 회복했고, 본토 기업들의 '홍콩행' 상장 준비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변화는 숫자 자체가 아니다. 베이징·상하이·선전은 같은 생활권 안에서 사람(팀·전문가)과 자본(VC·CVC), 지식(대학·연구소·커뮤니티), 테스트베드(병원·공장·캠퍼스)가 더 가깝게 붙었다. 미팅과 실험, 의사결정이 하루 단위로 오가는 속도의 생태계가 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힘을 발휘하는 방식은 화려한 계획이 아니라 문제에 바짝 붙어 빠르게 검증하고 필요한 동료를 끌어들여 해법을 함께 만들어가는 태도다.
이때 말하는 방식이 바로 '이펙추에이션(Effectuation)'이다. 미래를 예측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들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기업가의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 접근은 미국 버지니아대 다든스쿨의 사라스 사라스바시(Saras Sarasvathy) 교수가 숙련된 창업자들의 의사결정을 분석해 정리한 논리이다.
목표를 먼저 정하고 역산하는 전통적 방식과 달리 지금 가진 것으로 작게 시작하고, 감당 가능한 손실 안에서 빠르게 시험하며, 파트너와 함께 목표 자체를 갱신해 간다. 핵심은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있는 것부터 시작하고, 잃어도 되는 범위에서 시험하며, 초기 협력자를 모아 함께 설계하고, 예상 밖 변수를 배움으로 바꾸고, 통제 가능한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림을 하나 떠올려 보자. 캠퍼스 식당의 긴 줄을 줄이기 위해, '점심 11:30~13:30, 선주문, 현장 픽업 1주 시범'을 해 본다. 학생들은 미리 QR로 주문·결제하고, 점심에는 카운터 옆 픽업 선반에서 이름표가 붙은 봉투만 집어 간다. 우리는 줄 길이(분), 평균 대기시간, 시간당 회전율, 주문 성공률, 직원 추가 업무시간을 간단히 기록한다.
만약 줄이 줄지 않았다면 동선·안내 문구·선반 크기를 점검해 수정하고, 반대로 대기시간이 4분 줄고 회전율이 10% 늘었다면 선반 추가나 메뉴 축소로 다음 주에 다시 시험한다. 이렇게 작고 명확한 1주 실험만으로도 가설은 정밀해지고, 목표와 경로는 팀과 파트너가 함께 그려진다. 미래는 맞히는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행동과 관계로 조금씩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도 단순해진다. 과제의 출발점을 “무엇을 멋지게 만들까?”에서 “누구의 어떤 불편을, 이번 주 안에 무엇으로 시험해 볼까?”로 바꾼다. 그리고 그 시험을 함께해 줄 파트너와 인원·장소·기간이 분명한 실행 약속을 맺는다. 이렇게 작은 실험과 약속이 차곡차곡 쌓이면, 기업가정신은 머릿속 신념이 아니라 움직이는 행동이 된다. 이 주기가 학교와 연구실, 스타트업 같은 현장에서 꾸준히 돌기 시작하면, 보고서의 숫자보다 먼저 일의 리듬이 바뀐다. 미팅과 실행이 빨라지고, 피드백과 조정이 자연스러워지며, 변화는 '성과표'가 아니라 현장의 속도로 체감된다.
이 흐름이 오래가려면 평가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아이디어의 그럴듯함이나 발표 자료의 완성도보다, 현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확인했는지가 중심이 돼야 한다. 역할도 분명해진다. 학교와 가정은 정답을 빨리 찾는 훈련보다 관찰과 인터뷰 같은 느린 질문을 허락하고, 대학과 연구실은 실험을 서류로 끝내지 않게 현장 파트너와 파일럿 인원, 장소, 기간 같은 구체적 실행약속을 맺게 하고 그 이행을 지원한다. 초기투자자나 대학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그 약속들을 모아 규제 검토와 초기자본, 테스트베드를 잇는 실행 플랫폼이 돼 팀이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튼튼한 바닥을 깔아준다.
결국 기업가정신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태도의 일상화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복잡하지 않다. 한 가지 불편을 더 또렷이 보고, 이번 주에 해 볼 가장 작은 실험을 정하고, 그 실험에 함께 걸어줄 한 사람의 약속을 받는 것. 내일의 성과는 그 다음 주기의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주기가 학교와 연구실, 병원과 골목의 가게, 중소기업의 회의실에서 동시에 돌기 시작할 때, 미래는 예측이 아니라 습관이 돼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서지희 이화여대 기술지주 대표 jsuh@ewha.ac.kr
◆서지희 이화여대 기술지주회사 대표= 삼정KPMG 부대표, 위민인이노베이션 회장,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비상근 부회장을 겸하고 있다. 이화여대 기술지주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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