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utter] "왜 기부를 미뤄야 하죠?" 2040 고액기부자들이 온다

2024-10-09

필란트로피 가이드

2040 고액기부자들에겐 ‘가이드’가 필요하다

국내 NGO들이 ‘고액기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단체별로 고액모금팀을 재정비하고 기부자를 위한 다양한 고액기부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고액’의 기준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000만원 이상의 금액을 한 번에 기부할 경우 고액기부로 부른다.

최근에는 20대에서 40대의 젊은 고액기부자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전두위 기아대책 나눔참여본부장은 “기아대책 고액후원자 348명 중에 79명(22.7%)이 2040세대”라며 “10년 전만 해도 이 비율은 5%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2040세대의 고액기부는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들의 기부가 지속되게 하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굿네이버스·기아대책·서울사랑의열매·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단체명 가나다순) 등 5개 기관이 추천한 기부자 7명에 대한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통해 2040 고액기부가 갖는 특징과 시사점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① 한두 개 단체와 친밀하고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갖고 싶어 한다.

2040 고액기부자들은 여러 단체에 돈을 나누지 않는다. 한두 개 단체와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싶어 하며, 그 안에서 깊고 친밀하게 교류하길 원한다. 기부 시작 나이가 어리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수십 년간 관계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처음부터 한 단체에 ‘올인’하는 고액기부자는 드물다. FGI 결과, 대체로 3~4개 이상의 단체에 기부하다가 마음에 드는 1~2곳으로 줄이는 식이었다. 단체에 대해 잘 알고 기부를 시작하기보다는 일단 기부를 하면서 알아가는 형태였다. 어떤 계기로 완전히 단체의 ‘팬’이 돼 다른 곳을 정리하고 한 곳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가 기부하는 단체에는 10년 이상 근무한 장기근속자가 많아요. 그게 되게 좋아 보였어요. 직원들이 단체의 미션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 메시지가 일치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기부자가 힘들게 번 돈이니 그만큼 소중하게 잘 쓰겠다는 담당자의 말을 듣고 안심이 됐어요. 고맙기도 했고요. 말 한마디로 단체에 대한 충성도가 쑥 올라갔죠.”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기부자가 특정 단체에 기부를 늘리는 건 ‘아하 모멘트’라고 하는 깨달음의 구간을 지났기 때문인데, 그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다”면서 “기부자가 혼자서 깨달음을 얻긴 어렵고 단체가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② 기부의 가치를 잘 설명해 주는 ‘가이드’가 필요하다.

기존에 고액기부를 이끌었던 60~70대 기부자들은 돈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부를 물려받았든 자수성가했든 한평생 돈을 모으고 지키는데 힘써본 사람들이라 돈에 대한 철학이나 가치관이 나름 뚜렷하게 형성돼 있다.

2040세대는 엄청난 기부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돈에 대한 경험은 앞선 세대에 비해 부족하다. 각자의 계기나 동기로 기부를 시작했지만 그게 좋았는지 나빴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은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실제로 FGI 참가자들이 자신의 기부에 대해 해석하는 능력은 개인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기부의 가치와 기부가 만들어낸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1억원 가까운 돈을 기부하고도 그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황신애 이사는 “기부자들이 큰돈을 내놓고도 자신의 기부가 갖는 의미를 모른다는 건 무척 불행한 일”이라며 “그래서 ‘가이드(안내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좋은 기부 경험을 쌓아갈 수 있게 옆에서 해설해 주고 방향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단체나 모금가(펀드레이저)가 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③ 질문이 많은 세대, 대답을 못하면 기부자는 떠난다.

젊은 고액기부자들은 종종 신중하고 깐깐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단체가 보내 주는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회계도 전부 들여다본다. 60~70대 기부자들에 비해 질문도 많이 하는 편이다.

“궁금한 게 있어서 질문했는데 대답을 못 하면 갑자기 불안해지죠. 과연 내 돈이 잘 쓰이고 있을까. 그런 일이 반복될 때 기부를 끊었던 것 같아요.”

“한 단체에서 고액기부자 클럽을 만들었다며 연락이 왔는데 좀 이상했어요. 다른 단체의 기부자클럽을 벤치마킹한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내용이 엉성했어요. 역량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멀리하게 됐죠.”

“기존에 있던 프로그램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기획해줄 수 있는지 물었어요. 제 예산으로 최대의 사회적 효용을 만들어내고 싶었거든요. 그 제안을 받아준 곳에 고액기부를 했어요.”

2040 고액기부자들은 단체와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십의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쌍방향’ 소통을 요구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단체가 소액후원에 쓰던 일방적인 소통 방식을 고액기부자들에게 사용하고 있다. 팬시한 프로그램, 마케팅적인 접근으로는 2040 고액기부자들에게 인정받기 어렵다.

④ 일-육아-기부를 병행하며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한다.

앞선 세대 고액기부자들은 은퇴 후 자녀를 모두 성장시킨 뒤에 사회 환원의 의미로 고액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040 고액기부자들은 가장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시기에 기부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일-육아-기부’를 병행하게 되는 셈이다.

“20대 중반, 사업으로 충분한 돈을 벌고 나니 약간의 슬럼프가 왔어요. 그런데 제가 낸 기부금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의 삶이 바뀌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열심히 벌어야 할 이유가 생긴 거죠. 사업하는 사람들은 ‘셀프 동기부여’ 차원에서도 기부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한 단체는 ‘젊은 고액기부자 클럽’을 조직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30대 전후 기부자들이 모여 사업 고민도 나누고 기부에 대한 생각도 공유하는 모임이다. 자녀들 나이도 비슷해서 다 같이 해외로 ‘필드 트립’을 다녀오기도 했다.

“또래들만 모이는 거라서 훨씬 편하고 좋아요. 부모님 세대와 어울리는 모임은 아무래도 조금 어렵잖아요. 단체에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멤버들끼리 자체적으로 계획을 짜서 공동 기부를 하기도 해요.”

⑤ 고액기부자에 대한 ‘모델링’이 다음 세대의 기부를 좌우한다.

FGI에 참여한 기부자들은 앞선 기부자들을 ‘롤모델’ 삼아 고액기부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액기부를 실천한 국내 IT 벤처 창업가들, 해외 기업인들을 자신들의 롤모델로 꼽았다.

“현승원 디쉐어 의장님이 제 롤모델이에요. 돈을 벌고 쓰는 것에 대한 그분의 철학을 듣고 기부를 결심했죠.”

“먼저 고액기부를 실천한 아버지를 따라 기부했어요.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어요. 학생 때는 돈이 없어서 못 했지만,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기부해야죠.”

전문가들은 2040 고액기부자들에 대한 ‘모델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다음 세대의 롤모델이 되어 더 많은 기부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황신애 이사는 “멋있는 누군가를 보고 패턴을 모방하고 싶게 만드는 게 모델링인데, 고액기부의 강력한 유인력이 될 수 있다”면서 “젊은 고액기부자가 늘어나는 만큼 이들을 잘 성장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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