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통령과 중앙은행장의 ‘기 싸움’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1-30

미국 대선이 채 50일도 안 남은 2024년 9월18일 미국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제롬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컷’ 단행을 발표했다. 이튿날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은 수도 워싱턴의 경제인 클럽에서 연설하는 도중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내가 보기에는 경제 전반에 희소식”이라며 연준의 결정을 높이 평가했다. 금리가 내려가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며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니 대선에서 여당인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런데 바이든이 그 다음에 한 말이 재미있다. “나는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합니다. 대통령이 된 뒤 연준 의장과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요.”

여기에서 보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과 중앙은행의 관계는 ‘뜨거운 감자’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인하, 또는 동결 결정이 민심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소상공인과 서민들 입장에서 금리 인하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부 지지율이 오르고 여당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도 높아진다. 반대로 금리를 현행 수준 그대로 두거나 올리면 정권의 인기는 떨어질 게 뻔하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할 중앙은행으로선 국민과 정부가 원한다고 금리를 마냥 낮출 수 없다는 점이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정치로부터 중앙은행의 독립’이 강조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파월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임명된 인물이다. 그런데 2022년 4년 1차 임기가 끝난 파월을 연임시킨 사람은 바로 바이든이다. 좋게 말하면 트럼프와 바이든으로부터 모두 인정을 받은 보기 드문 인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런 파월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미 대선을 앞두고 금리를 인하한 파월의 결정에 대해 당시 공화당 후보이던 트럼프는 “대선 전에는 금리를 인하해선 안 된다”며 “연준이 정치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대선이 예상과 달리 트럼프의 압승으로 끝난 뒤 일각에선 ‘파월이 물러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사퇴를 요구해도 그만두지 않겠다”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 했다.

당선인 꼬리표를 뗴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또 파월과 충돌했다. 트럼프는 최근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참가자들을 상대로 행한 화상 연설에서 연준의 금리 인하 필요성을 역설했다. 취재진이 ‘파월과 대화를 하겠느냐’고 묻자 “적절한 시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파월이 이끄는 연준은 트럼프의 요구를 무시한 채 금리 동결 결정을 내렸다. 앞선 트럼프의 금리 인하 압박에 대해 그는 “논평하는 게 부적절하다”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대통령 측에서)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금리 인하를 위해 적절한 시기에 파월과 대화하겠다’고 다짐한 이상 행동에 옮길 가능성이 크다. 미국 역사상 초유의 대통령과 중앙은행 간 정면 충돌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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