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만화 <왓치맨>에 인용되며 더 유명해진 로마의 풍자시 구절이다. 최근 몇몇 언론과 진보당 논평을 통해 공론화된 지난해 12월 KBS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을 보며 이 문구가 떠올랐다. 해당 회의에서 노현숙(건국대 글로벌캠퍼스 교수) 위원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부터 탄핵까지의 보도와 관련해 “‘내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객관적 검토가 필요한데 그에 대한 부분이 미흡했던 점이 있던 것 같다. 한쪽에선 내란죄로 몰고 있지만 그게 아니라는 법적인 해석들도 많기 때문에, 정확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으면 좋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양쪽의 의견을 전달해주면 좋겠다”며 비슷한 맥락에서 “좌파 집회(탄핵 찬성 집회)는 성실하게 보도하는 반면 우파 집회(탄핵 반대 집회)는 보도를 안 하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을 남겼다. 이상기(온라인 매체 The AsiaN 발행인) 위원은 뜬금없이 10초 발언 기회를 요청하며 “지금 우리 군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으니 ‘군심’을 잡아줄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하나 준비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장 경악스러운 건 홍승철(사단법인 행복을 나누는 복지법인 이사장) 위원의 발언인데, 그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다룬 <다큐 인사이트> ‘이웃집 아이들’에 대해 “동성애 커플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되고, 남자와 남자끼리, 여자와 여자끼리 결혼해도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그런 인식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공영방송 KBS가 했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번 회의의 문제적 발언들에 대해 경항신문과 한겨레 등은 지난해 9월부터 출범한 이번 32기 KBS 시청자위위원회가 보수 성향으로 대폭 물갈이 된 것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사실 회의록 전문을 보면 진보냐 보수냐는 구분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KBS 출입 때마다 로비 안내 데스크에서 출입증과 지성을 교환한 게 아니라면, 그들은 그냥 부적격자다.
노현숙 위원이 지난 10월 회의에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생중계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 할 정도로 친정부적인 건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란’ 표현에 대한 노현숙 위원의 지적은 그의 정파성과 별개로 저널리즘의 공정성에 대한 얄팍한 인식을 보여준다. 그는 ‘내란’이란 단어를 쓰기 위해선 객관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지난해 12월 3일 밤 총을 차고 국회에 진입한 군인들과 그들을 막으려는 시민들의 저항,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계엄령 포고만큼 생생하게 경험된 객관적 사실이 어디 있는가. 내란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기에 각 입장을 동등하게 소개해야 한다는 건 저널리즘의 균형에 대한 전형적 오해다. 언론학자 토머스 패터슨은 <뉴스 생태학>(오현경 역)에서 “미국의 객관적 저널리즘 모델은 사실의 왜곡을 방어하는 데 취약하다. 균형에 대한 책무가 그러한 왜곡을 일으킬 뿐 아니라, 그러한 왜곡이 점검받지 않은 채 통과되는 것을 용인한다”며 “기자들은 사실을 확인하는 데 책임을 지기보다 ‘균형’, 즉 양측 모두에 각자가 사실이라고 하는 것들을 제시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했다”고 비판한다. 가령 지난 1월 6일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제외한 것에 대해 KBS <뉴스9>은 여야의 주장을 함께 소개했고, MBC <뉴스데스크>는 ‘알고보니’ 코너를 통해 내란죄 성립 여부(형법)와 상관없이 헌법재판소가 탄핵 유무의 판단 대상으로 삼는 사실관계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전자가 객관적으로 균형만 맞춰 책임을 회피하는 보도라면, 후자는 진실에 접근하는 보도다. 노현숙 위원이 주문한 게 전자다. 탄핵 찬성 집회와 반대 집회를 동일하게 다뤄야 한다는 요구도 마찬가지다. 탄핵 찬성 집회는 국회를 장악하려 한 위헌적 시도에 근거하지만, 탄핵 반대 집회는 윤석열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근거한다. 이 둘을 동등하게 다루는 게 바로 사실과 진실의 왜곡이다.
기계적 균형에 대한 노현숙 위원의 집착은 기이할 정도인데, 지난 11월 회의록에선 KBS를 비롯한 국내 언론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압승을 예측하지 못한 것을 CNN, 뉴욕타임즈 등의 친민주당 언론 위주로 소스를 가져왔기 때문이라 지적하며 “균형 잡힌 보도를 하려면 FOX TV가 반민주당으로 편향됐다 하더라도 양쪽을 다 보도하는 게 맞다”고 제언했다. 미 대선 보도를 비롯해 국내 언론이 CNN 및 친민주당 언론 자료와 관점에 기울어진 면이 있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FOX TV는 2020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패배에 대해 개표기 조작 가능성, 즉 윤석열의 뇌를 잠식한 극우 유튜브가 그러하듯 부정선거 음모론을 보도한 바 있다. 그로 인해 2021년 트럼프를 지지하는 폭도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지난해 FOX TV는 투·개표기 제조업체에 1조 원에 달하는 돈을 배상해야 했다. 트럼프를 위해선 가짜 뉴스도 불사하는 FOX TV는 과연 트럼프 승리를 예측한 걸까, 그런 보도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걸까. 기계적 균형에 대한 요구는 이러한 다양한 맥락에 대한 질문과 해석을 밀어낸다. 언론학자 미첼 스티븐스가 저서 <비욘드 뉴스:지혜의 저널리즘>(김인현 역)에서 “‘사실 숭배자’란 공통 이데올로기”로 인해 “‘토론과 설명’은 추방당했다. 기자들을 맥락으로 쫓아버리거나, 주장을 쥐어짜게 만들면서 사실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이유 때문”이라 술회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놓고 성소수자 혐오를 드러낸 홍승철 위원 역시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균형을 근거로 본인의 차별적 사고를 정당화한 건 그래서 조금도 놀랍지 않다. 그는 <다큐 인사이트> ‘이웃집 아이들’에 대해 “동성애 반대하는 쪽의 의견도 방송에 나가야 하지 않느냐”며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동성애를 찬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KBS가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것 아닌가? 가장 민감한 시기(정황상 계엄과 탄핵 시국으로 보임)에 한쪽 편을 들어서 조장했다”고 말했다. 아니 대체 정체성을 어떻게 반대하나. 나는 당신이 여성인 것에 반대합니다, 나는 당신이 전라도인인 것에 반대합니다. 같은 말이 타당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당신이 동성애자인 것에 반대합니다, 라는 말도 타당할 수 없다. 홍승철 위원은 “퀴어축제라든지 해서 사회적 갈등이 굉장히 심각한 상태”라고 우려했지만, 갈등은 동성애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동성애자를 거부하는 홍승철 위원 같은 차별주의자를 통해 만들어진다. 조금 심술궂게 부연하자면, 그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이 시점에 동성애를 조장하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 데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우려했지만, 한국 저출생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이를 입양하고 아이에 우호적인 게이 부부가 아니라, 본인의 차별과 혐오를 인식하지 못하는 ‘개저씨’일 것이다.
이렇듯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시청자위원회라는 권위를 얻었다. KBS 홈페이지를 인용하면 “KBS 시청자위원회는 방송법에 의거해 시청자의 권익보호를 목적으로 설치된 기구로서 시청자를 대표해 방송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방송법 87조에서 종합편성 혹은 보도전문편성을 하는 방송사업자에게 부과한 의무다. 방송 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막기 위한 시청자위원회의 권한은 상당히 막강한데, 방송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위원회의 시정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위원회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시청자불만처리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지난 12월 7일 KBS 기자협회는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한 특별취재팀 구성 요구가 묵살되자 “KBS가 내란의 공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고 KBS 보도의 자율성과 신뢰성 추락을 걱정했지만, 감시자라는 자는 ‘내란’ 표현을 문제 삼으며 정권의 KBS 장악에 힘을 실어줬다. 이런 협잡에 대한 일말의 안전장치가 회의록 공개다. 비록 현재 KBS시청자위원회 자료실의 12월 회의록 조회수는 겨우 45회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이 숫자가 더 커지길 바란다. 학적 권위나 전문성을 인정받아 추천된 위원들이 정말로 시청자, 즉 우리를 대표해 일하고 있는지 밀실이 아닌 개방된 공론장에서 논의할 더 많은 기회를 위해. 이번처럼 헛소리를 하면 그것이 회의록으로 남아 영원히 모두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더 큰 두려움을 주기 위해.
<위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