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폭발’ 수천 명 다치자 레바논 병원 인산인해···의사들 “의료 시스템 한계”

2024-09-22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대원들이 소지한 무선 호출기(삐삐)와 무전기(워키토키)가 동시 폭발해 민간인 수천 명이 다치면서 이미 부실했던 레바논 의료시스템이 한계로 몰리고 있다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레바논 의사인 다니아 엘할라크 박사는 무선 통신 기기가 폭발한 이후 부상자 수백 명이 병원을 찾았으며, 많은 부상자의 얼굴이 훼손된 상태였다고 NYT에 전했다. 지난 17~18일 레바논에서 호출기·무전기 동시 폭발로 다친 민간인은 3200여명에 이른다.

레바논의 심각한 경제난으로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상황에서 부상자가 밀려들자 병원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현지 병원에서 자원봉사 중인 안과 의사 피에르 마르델리 박사는 의사로 일한 지 27년 만에 처음으로 마취 없이 환자의 눈에 난 상처를 꿰맸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들이 호출기로 수신된 메시지를 확인하려다가 기기가 폭발해 눈을 많이 다쳤다면서 “이 공격은 눈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루트의 마운트레바논 병원 성형외과에서 재건 수술을 담당한 앙투안 아비 아부 박사는 자신이 치료한 환자 대부분이 한쪽 또는 양쪽 눈을 잃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폭발 부상자 중 최소 40%가 영구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것으로 추산했다.

NYT에 따르면 레바논 의사들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전면전이 발생하면 국내 보건 시스템이 이에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했다.

베이루트 아메리칸대 소속 외과 의사인 가산 아부 시타 박사는 지난 20일 무선 기기 폭발로 다친 사람들을 수술하던 때 이스라엘이 베이루트를 공습하자 과거 자신이 의료봉사를 했던 가자지구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시타 박사는 “전쟁이 본격화하면 레바논의 의료 시스템은 부상자를 치료할 능력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피라스 아비아드 레바논 보건장관은 이번 폭발 피해자들에게 장기적으로 치료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레바논 국민은 병든 정부의 약속에 회의적”이라고 NYT는 보도했다.

유엔은 이번 사건이 전쟁범죄라고 비난하면서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전날 무선 기기 폭발 사태와 관련해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이번 공격의 폭과 영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공격은 통신기기가 무기가 되는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줬다”며 “이것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수는 없다”고 규탄했다.

튀르크 대표는 이 작전이 민간인에게 공포를 확산시키기 위한 의도적 공격이었다는 점과 국제인도법이 무해해 보이는 휴대용 물체를 부비트랩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무선 통신 기기 폭발이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같은 날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도 레바논과 이스라엘 국경 지대의 긴장 고조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양측에 공격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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