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늘어도 경기 둔화 심화…중국 ‘내수 주도 성장’ 시동

2025-12-17

경제성장 모델 전환, 중국의 새로운 실험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성장 엔진은 수출이다. 이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중국이 성장 모델의 전환에 나섰다. ‘내수 주도 성장’이다. 중국이 지난 10~11일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내년도 최우선 과제로 ‘내수 주도의 강대한 국내시장 건설’을 공식 선언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내수 확대가 전략적 조치임을 밝힌 데 이어 내수 주도 성장을 위한 부처별 정책 발표도 잇따르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속 투자 급감

집값 하락에 소비 심리도 위축

임금 인상, 사회안전망 강화로

소비 여력 확보, 내수 확대 유도

불안한 노동시장과 높은 저축률

위안화 약세도 내수 발목 잡아

중국 정부는 그동안 소비 촉진과 투자 효율성 개선으로 내수 확대를 도모한다는 기조를 유지해왔지만, 이번에는 내수 우선 원칙에 제대로 방점을 찍었다. 내년에 시작되는 15차 5개년 경제 계획(2026~30년)에도 ‘전국 통일 대시장 건설’을 통한 초대형 내수 시장 조성에 대한 내용을 담았을 정도다.

GDP 40% 수준에 불과한 중국의 소비

내수 확대를 위해 중국 정부는 최저임금과 기업 임금을 인상하는 한편 교육과 복지 등 사회 안전망 강화에 나설 방침이다. 가처분 소득을 늘려 소득을 기반으로 한 소비 진작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백은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소득 증대와 함께 교육과 의료·복지 등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가계 비용을 줄이고 소비 여력을 확보하는 등 구조적 측면에서 내수 확대를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성장 전략의 방향을 트는 건 수출 주도 모델이 안팎의 거센 도전과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당장 커지는 건 외부의 압력이다. 중국의 수출이 야기하는 글로벌 무역 불균형은 심화하고 있다. 지난 8일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올해 1~11월 누적 무역 흑자는 1조759억 달러(약 1592조원)를 기록했다. 연간 기준 사상 첫 1조 달러(약 1480조원) 돌파가 예상된다. 무역 흑자로 중국에 쌓이는 달러가 늘어날수록 상대국의 무역 적자는 커져만 간다. 중국을 둘러싼 국제 무역의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수출은 세계 경제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을 낮춘다. 하지만 중국산 제품이 전 세계 시장을 휩쓸면서 주요국의 제조업 기반은 무너지고 있다. 골드만삭스 등에 따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포인트 증가할 경우 수출 경쟁 심화로 독일 등 주요 제조업 국가의 GDP 성장률은 0.1~0.3%포인트 타격받는 것으로 추정됐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난 10일 중국과의 연례 협의 이후 “중국의 경제 규모가 너무 커 수출로만 큰 폭의 성장을 하기 어렵고, 수출 주도 성장에 계속 의존할 경우 세계 무역 긴장을 더욱 고조할 우려가 있다”며 “중국이 수출보다는 내수를 확대하는 ‘용감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 이유다.

내수 강화로 등을 떠미는 건 외부만이 아니다. 중국 내부에서도 내수 위주로 경제 구조를 개혁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경제 규모로는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지만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수준에 불과하다. 소비 대국인 미국(68%)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고 한국(48%)에도 못 미친다.

더 큰 문제는 수출 호황이 가계 소득 증가나 소비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올해 3분기 중국의 1인당 가처분 소득 증가율은 3.8%에 불과하다. 소득은 낮게 오르고 소비 증가세도 더디다. 이렇다 보니 실제로 뜨거운 수출과 달리 경기 둔화세는 뚜렷하다. 이미 생산과 소비, 투자 모두 경고등이 켜졌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달 산업생산은 1년 전보다 4.8% 늘어나면서 증가율로는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낮았다. 같은 기간 소매판매도 1.3% 늘어나는 데 그쳐 전망치(2.8%)를 크게 밑돌며 6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코로나19 봉쇄 기간이던 2022년 12월 이후 가장 낮았다. 최대 쇼핑 시즌인 광군제(11월 11일)도 힘을 쓰지 못했다.

투자 부진도 이어지고 있다. 1~11월 고정자산 투자는 1년 전보다 2.6% 줄었다. 시장 예상치(-2.3%)보다도 감소세가 크고, 1~10월(-1.7%) 투자 감소 폭보다 훨씬 커졌다. 1~11월 부동산 투자는 1년 전보다 15.9% 감소했다. 1~10월(-14.7%)보다 더 나빠졌다. 뉴욕타임스(NYT)는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의 투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제 성장을 통해 세계 질서를 재편해 온 중국이 (투자 등에) 보수적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회사 완커 디폴트 위험 커져

투자와 소비 감소의 주요 원인은 위축된 부동산 시장이다. 헝다(恒大·에버그란데)와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 가든) 등 대형부동산 개발업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따른 부동산 시장 침체가 수 년째 이어지고 있다. 중국 GDP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의 부진이 경제 전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살얼음판이다. 주택 가격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주택 수요도 급감했다. 올해 들어 미분양·미완공 물량은 역대 최대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10월 부동산 투자와 주택 거래량은 1년 전보다 각각 24.1%와 18.8% 감소했다. 신규 착공과 시공, 준공 면적은 1년 전보다 각각 29.5%, 9.4%, 28.2% 줄었다.

게다가 부동산 시장에는 또 다른 대형 악재가 대기 중이다. 매출액 기준 6위 규모인 부동산 개발 회사 완커(萬科·China Vanke)의 디폴트 위험이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 만기가 도래한 20억 위안(약 4204억원) 규모 역내 채권의 상환 연장안이 부결됐다. 5영업일의 유예기간 내에 채무를 상환하거나 별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디폴트에 빠진다. 그와 별도로 오는 28일에는 37억 위안(약 7777억원) 규모의 채무 상환 만기가 도래한다. 완커의 상황은 만만치 않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내년 6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원리금만 134억 위안(약 2조8171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완커의 자금은 바닥난 상태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완커의 전체 부채 중 1년 이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것이 42.7%나 된다. 액수는 약 1554억 위안(약 33조원)에 달한다. 반면 지난 9월 기준 완커가 보유한 현금은 657억 위안(약 14조원)으로 단기 부채 해결에는 역부족이다.

대주주 지원 여부도 불투명하다. 완커의 대주주는 중국 선전시 국유기업인 선전메트로다. 선전메트로는 지난 2월부터 13차례에 걸쳐 완커에 314억6000만 위안(약 6조6138억원)의 자금을 지원했지만 최근 경영진이 교체되며 추가 자금을 투입할지는 미지수다. 정부 지원 없이 완커도 부채 구조조정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시장의 전망도 나온다.

대외 충격 완화 위해 내수 확대 필요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소비 악화를 야기하는 건 중국 가계 자산의 70%가량이 부동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가계 입장에서 집값이 떨어지면 자산이 줄어드는 셈이다. 이른바 ‘역자산 효과’다. 얇아진 지갑은 소비 위축을 낳는다. ‘소비 다운그레이드(消費降級)’가 확산하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심화하고 있다. 소비 위축은 기업 수익 악화를 야기하고 임금 삭감과 고용 한파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내수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과의 무역 전쟁 등 외부 불확실성도 내수 주도형 성장이란 경제 구조 전환에 나서는 이유다. 내수 시장 확대와 공급망 개편 등을 통해 외부의 충격에 따른 수출 감소 등의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진지를 구축하겠다는 포석이다.

차오허핑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 관영 매체인 글로벌 타임스에 “중국의 경제 성장은 수출 및 투자 주도형 모델에 주로 의존해왔지만 외부 불확실성 증가와 보호무역주의 심화,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 속에 내수 확대가 장기 전략의 우선순위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내수와 수출 사이 딜레마 빠질 수도

중국 정부가 ‘내수 주도 성장’을 공식화하고 시 주석을 비롯한 각 부처가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상당하다. 노동시장 불안과 사회 안전망 부족 등으로 중국의 저축률은 여전히 높고 가계가 선뜻 지갑을 열기 쉽지 않다. 경제 구조상 내수 확대가 만만치 않은 과제란 이야기다.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건 중국이 내수 주도 성장을 위해 기존의 수출 주도 모델을 어느 정도까지 희생할 수 있느냐다. 내수와 수출 사이에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수 확대를 위한 위안화 절상에 대한 정책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문은 커진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수출을 위해 내수를 희생해왔다. 일반적으로 무역 흑자가 커지면 해당 통화 가치는 오르지만 위안화의 움직임은 그 반대다. 수출을 성장 동력으로 삼은 중국이 위안화 약세를 용인해왔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위안화 가치가 경제 기초체력 대비 25%가량 저평가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최근 중국 내부에서 위안화 강세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지만 수출에 미칠 부담까지 감내하며 위안화 절상에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로이터는 “중국이 위안화 강세를 선택하더라도 급격한 절상보다는 통제된 방식의 점진적 조정을 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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