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볼쇼이극장 예술감독을 지낸 발레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별세했다고 19일 타스 통신 등 러시아 매체가 보도했다. 98세.
192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리고로비치는 레닌그라드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키로프 발레단(현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해 1961년까지 무용수로 활약했다.

그의 첫 안무작은 1957년 발표한 '석화'(The Stone Flower)다.
전설 속 석화를 찾아 마법의 세계로 떠나는 석공의 여정을 통해, 아름다움을 향한 예술가의 갈망을 무대 위에 풀어냈다. 이 작품은 그리가로비치를 볼쇼이 극장의 수석 안무가로 이끄는 발판이 됐고,
이후 스파르타쿠스, 이반 뇌제, 사랑의 전설 등 대작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다.
1961년 그리고로비치는 두 번째 작품인 '사랑의 전설'(The Legend Of Love)을 발표해 성공을 거두고 1962년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 마스터가 된다. 1964년에는 57세의 나이로 볼쇼이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1970년대 그리고로비치는 클래식발레 대표작을 재창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 등 고전발레의 걸작이 그의 손에서 재탄생했다.

그리고로비치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국립발레단과 교류하며 한국 발레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립발레단에서 공연하는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라 바야데르'는 모두 원작이 아닌 그리고로비치의 재안무작이다. 그는 1990년대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을 직접 지도했고 국립발레단은 '스파르타쿠스'를 2001년 아시아 초연했다. 국립발레단 간판 무용수 박슬기는 이 작품의 예기나 역을 맡아 2017년 무용계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 노미네이트됐다.
그리고로비치 재직 당시 볼쇼이 발레단은 90회가 넘는 세계 순회공연을 통해 막강한 인지도와 명성을 누렸다. 1995년, 무용수 계약 문제를 둘러싼 갈등 끝에 그리고로비치가 사임하자, 볼쇼이 극장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무용수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그가 내부에서 얼마나 두터운 신망을 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로비치는 2008년 볼쇼이 발레단으로 복귀해 안무가이자 발레마스터로 다시 활동했다. 2017년에는 볼쇼이 극장이 그의 90세 생일을 기념해 그리고로비치의 업적을 기리기는 두 달간의 특별 공연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