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스리랑카를 시작으로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를 거쳐 최근 네팔까지 번진 남아시아의 반정부 시위에는 공통점이 있다. 높은 청년 실업과 부패한 권력에 분노한 ‘젠지(GenZ·Z세대,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가 시위를 이끈 주축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현지시간) 남아시아에 도미노처럼 번지는 대규모 시위를 “젠지 혁명”이라고 부르면서 이를 주도한 청년세대에 주목했다. 시위가 촉발된 결정적인 계기와 국가별 상황은 달랐지만, 중위 연령이 낮은 젊은 국가인 네팔(25.3세)·인도네시아(30.4세)·방글라데시(26.0세)·스리랑카(33.3세)에선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청년들이 분노하자 정권이 무너졌다.
2022년 7월엔 스리랑카에서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방글라데시에서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쫓겨났다. 인도네시아에선 지난달 시작된 반정부 시위로 장관 5명이 해임되고 10여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지난 9일부터 시위가 이어진 네팔에선 샤르마 올리 전 총리가 물러난 뒤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이 임시 총리를 맡았다.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 진압에 맞서 대통령궁과 정부 청사 등에 불을 지르고 정치인을 구타하는 등 폭력도 불사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최소 72명이 숨졌다.
FT가 진단한 남아시아 청년들의 분노엔 ①높은 청년 실업률 ②부를 독점한 정치 엘리트 ③고질적인 부패 문제가 깔려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청년실업률(15~24세)은 스리랑카(22.3%)와 네팔(20.8%), 인도네시아(16%) 모두 세계 평균(13.5%)을 웃돌았다. 상대적으로 낮은 방글라데시(11.46%)도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는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브랜드의 의류 공급을 담당하던 섬유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채용 시장이 얼어붙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남아시아 국가들의 청년실업률을 두고 “개발도상국에서 발전의 사다리가 끊겼다”는 진단했다. 증가하는 청년 노동력을 수용할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자 정부에 대한 불만은 높아져 갔다.

권력을 오랫동안 독점한 정치권력의 부패도 반정부 시위를 당기는 도화선이 됐다. 스리랑카의 라자팍사 전 대통령 가문은 2005년 이후 20년 동안 대통령과 총리 등을 배출했고, 정부가 맺은 계약에서 수수료를 뜯어내며 가문의 재산을 늘렸다. ‘국부(國父)’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의 딸인 세이크 하시나 전 총리는 5연임을 하며 수도 다카 주변 노른자 땅을 소유하는 등 부정축재를 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시나 전 총리가 시위대를 피해 인도로 도망가자 그의 일가가 소유한 4753만달러(약 700억원)의 재산은 동결됐다.
인도네시아에선 지난해 9월부터 국회의원들이 1인당 5000만 루피(약 422만원)의 주택 수당을 매달 받았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젊은이들이 분노했다. 해당 금액은 인도네시아 근로자 평균 월급(284만 루피·약 24만원)의 17배가 넘는다. 안 그래도 인도네시아에선 긴축 재정 여파로 지난 7월부터 재산세가 최대 10배까지 올랐다. 네팔에선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의 자녀인 ‘네포 키즈(nepokids)’가 화려한 명품을 두르고 휴가를 보내는 모습이 SNS로 공유되면서 동년배인 젠지 세대의 분노를 샀다.
FT는 ”청년 인구가 많고 경제적 조건이 비슷한 파키스탄 등 인접 국가에서도 유사한 시위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며 “젠지 세대가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