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정이란 무엇인가
박홍규 지음
들녘 | 352쪽 | 1만9200원
7년 전 경향신문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가 화제가 된 이후 ‘○○이란 무엇인가’는 밈처럼 자리 잡았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상대를 당황하게 하라, <우정이란 무엇인가>도 책 제목처럼 독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정이란 뭘까.
책은 직설적으로 답부터 제시하지는 않지만 읽어보면 저자가 말하려는 바를 알게 된다. 대뜸 답을 내놓는 대신 저자는 동·서·고·금 철학자와 사상가, 문인들의 ‘우정론’을 살펴본다. 그냥 쭉 살펴봤다면 ‘대입 논술 뽀개기’ ‘이것만 읽으면 서울대 갈 수 있다’ 정도의 독서·논술 시리즈 수험교재와 다를 바가 없었을 텐데, 이 책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 존대말로 쓰인 책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조곤조곤하되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가진 현인과 함께 여행하는 느낌마저 든다.
책에는 ‘그건 틀렸다’고 잘라 말하는 우정론이 꽤 등장한다. ‘동아시아에는 친구가 없다’며 공자와 유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언급하는가 하면,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관점으로 바라본다. 근대 유럽의 루소와 칸트에 대해서는 꽤 분량을 할애해 그들의 우정론을 생애시기별로 서술할 정도로 촘촘히 따라가 본다.
조선 후기 홍대용, 박지원, 정약용의 우정론을 평가하면서도 즉 신분질서와 계급의 유교적 영향 아래 있는 우정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요즘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제조기 쇼펜하우어와 니체도 언급되는데 이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며 간단히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 시점에 우정을 말하고 또 책까지 펴냈을까. 출판사의 저자 소개 글마따나 그는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그 반대편 혈연·지연·학연 연고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패거리주의 아래에서 우정이란 없다. 상하질서와 ‘끼리끼리’ 잘살겠다는 욕심만 있을 뿐이다. 정치적·사회적 극단의 시대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진정한 우정이란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자치를 살고 있는 개인끼리 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