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주민 이모(40대)씨는 올해 유독 쥐를 많이 봤다고 한다. 시커먼 쥐들은 단지 내 음식물쓰레기 수거장을 훑거나 놀이터 정자 주변 등을 활보했다. ‘서생원(鼠生員)’의 출몰은 하수관 수위가 높아지는 집중호우 이후 더 잦았다. 이씨는 “얼마나 자주 목격됐으면 아이들이 쥐 사체를 보고도 놀라지 않을 정도”라며 “주변이 개발되면서 터전을 잃은 쥐들이 구축으로 몰린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쥐 출몰이 잇따르고 있다. 강남역과 광화문, 홍대입구 등 유동인구가 많은 중심 상업지역은 물론 변두리 주거지도 마찬가지다. “쥐를 봤다”는 신고가 이어지며 시민 불안이 커지자 자치구들은 ‘쥐와의 전쟁’에 나섰다.

20일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서울 시내 쥐 출몰·목격 민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279건이던 민원 건수는 지난해 2181건으로 확 늘었다. 올해도 7월 기준 이미 1555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특히 강남·마포·관악구에서 민원이 집중됐다. 상업지역의 음식물 쓰레기가 쥐 출몰의 원인으로 꼽힌다. 쥐는 법정 3급 감염병인 신증후군출혈열과 렙토스피라증 등을 전파한다. 쥐 분변 속 바이러스가 사람의 호흡기·점막 등으로 침투해 고열 등 증상을 일으킨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서울의 쥐 서식 밀도는 낮은 수준이었다. 서울시가 2020년 개체 수 기초 조사를 위해 쥐 포획틀 3000개를 설치했는데 88마리가 잡혔다. 포획률이 2.9% 수준이다. “생활주변에서 쥐를 보지 못했다”는 응답도 76.7%로 나타났다. 늘어난 출몰 민원만큼 실제로 쥐 개체 수가 증가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쥐들이 안식처인 하수도와 저층 주거지 등이 정비돼 지상 출몰 빈도가 높아질 수 있어서다. 다만 우동걸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은 “(민원이 급증한 점을 볼 때) 개체 수 증가로 추론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후 온난화로 추위에 약한 쥐들의 생존율이 올라가고 도심 내 음식물쓰레기가 관리되지 않아 먹이 조건이 개선됐을 것”이라고 했다. 사료에 길든 길고양이는 쥐를 잘 사냥하지 않는다고 한다.
쥐 출몰은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실린 최신 연구에 따르면 미국·일본·네델란드 등 16개 도시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워싱턴 DC 등 11개 도시에서 지난 10여년 간 쥐 개체 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쥐 개체 수 증가는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닌 기후변화와 도시 구조 변화를 반영하는 생태적 지표”라고 결론 내렸다.

자치구들은 쥐와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강남구는 올해 쥐가 자주 목격되는 전통시장 부근과 하수구 주변, 아파트 음식물쓰레기 수거장 등에 스마트 트랩(쥐덫) 50대를 설치했다. 쥐가 트랩 안으로 들어오면 센서가 수거 신호를 보낸다. 방역기동반도 꾸려 공원과 하천변 등에 쥐약을 집중적으로 뿌렸다. 관악구는 ‘방역 종합대책’을 마련한 상태다. 쥐 출몰 지역에 스마트 쥐덫 47대를 놓았다. 주·야간 순환청소로 주 먹이원인 음식물쓰레기를 아예 남기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자치구 관계자들은 “1970년대 ‘쥐잡기 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쥐 출몰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을 해결하려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