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정치권에서 정년연장에 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년연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1월 3일 ‘회복과 성장을 위한 정년연장특별위원회 제1차 본위원회의’를 열고 연내 입법을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양대 노총도 연내 입법을 재촉하고 있다. 국민 여론도 전체적으로 찬성이 반대보다 높아 보인다.
그럼 그냥 빨리빨리 입법하고 시행하면 될 것인가? 아니다.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정년연장에 대한 졸속 입법과 조기 시행에 강하게 반대한다. 심지어 정년연장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하에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밝히고자 한다.
우선 정년연장에 대한 찬성 측 주장을 살펴보자. 가장 핵심적인 논거는 ‘퇴직 후 생계비 절벽’에서 60대 초반을 구해내자는 것이다. 현행 정년인 60세에 퇴직한 뒤 국민연금이 지급되는 시기인 63세(나중에는 65세로 늦춰짐)까지는 별다른 소득이 없어서 생계비 절벽에 직면하기에 십상인데, 이런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정년을 국민연금의 지급 시기에 맞춰 단계적으로 연장하자는 것이다.
65세까지 의무적 고용은 비효율적
위 주장은 ‘문제점 인식과 해법 제시’라는 구조로 돼 있다. 일단 문제점은 ‘퇴직 후 생계비 절벽’이다. 이것은 타당한 지적인가? 그렇다. 많은 노년층이 퇴직(그것이 정년퇴직이건 희망퇴직이건 간에) 이후 갑작스러운 생계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왜 미리미리 노후대비를 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할 수도 있으나, 인간이 그리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된 ‘정년연장’도 적절한 정책인가? 그건 아니다. 바로 여기가 논리적 비약이 발생하는 부분이다.
퇴직 후 생계 불안은 그 본질이 복지 문제다. 기존 복지제도인 공적 연금이 대응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 ‘절벽’의 핵심 이유다. 그렇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해법은 무엇인가? 복지제도의 확충이다. 복지가 부족해서 문제가 생겼으니 복지를 늘리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해법이다. 다시 말해서, 퇴직 후 연금 미수령 시기의 노년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면 이들을 지원하면 된다. 그 방식이 국가의 보조금이건 연금 지급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건 그것은 차후 문제다.
그렇다면 정년연장은 복지 문제에 대한 해법일 수 있을까? ‘복지 증진을 위한 정년연장’이 말이 되는 주장일까? 아니다. 이 해법은 복지 문제를 복지정책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생산 과정에 대한 개입과 왜곡으로 풀려는 것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문제다.
여기서 어떤 독자는 ‘정년연장이 왜 꼭 생산을 왜곡한다고 봐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 해답은 자명하다. 기업이 자신들의 생산 과정에서 60대 초반의 인력이 꼭 필요하다면 현행 규정에 따라 정년퇴직한 후에도 이들을 어떤 형태로든 다시 고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60대 초반보다 청년층을 더 필요로 한다면 이들 대신 청년층을 새로 고용할 것이다(물론 노동 절약적 방법을 채택해서 추가 고용 자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모두 기업의 결정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경제적 효율성에 부합한다. 그런데 정년을 연장하게 되면 기업은 의무적으로 이들을 65세까지 고용해야 한다. 이것은 잠재적으로 비효율적이다.
복지 문제는 복지정책으로 풀자
이런 원론적 차원을 떠나 조금 더 현실을 살펴보면 정년연장의 문제점은 더 분명하다. 현재 정년이 60세라고 하지만 이를 지키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아마도 공공부문을 제외하고 사기업체로 눈길을 돌리면 ‘정년’이라는 개념의 현실성은 급격히 사라질 것이다. 오히려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이 60세 정년퇴직보다 더 일상적일 수 있다. ‘사오정과 오륙도’라는 자조적 표현이 괜히 나왔겠는가? 60세 정년도 못 찾아 먹는 이들에게 정년을 65까지로 연장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꼬박꼬박 정년을 찾아 먹는 경제 부문이 있을 수 있다. 아마도 공기업과 같은 공공부문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실제로 정년연장을 단계적으로 시행하자는 주장 중에는 공공부문부터 먼저 시행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다른 측면이 문제가 된다. 바로 세대 간 갈등이다.
공기업 일자리는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직군 중 하나다. 정년연장 여부에 따라 이들 공기업의 신규 채용 규모가 결정되는데, 이는 곧바로 이들 일자리를 목표로 구직을 하는 청년층의 취업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을 때 정규직을 목표로 취업 준비를 하던 청년층과 그 부모들을 중심으로 불었던 민심의 역풍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년층 고용을 노년층으로 대체하는 왜곡이 생산의 비효율성과 결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졸속 입법을 해서는 안 되는 절차적 이유도 있다. 혹자는 어쩌면 “일단 정년연장을 해보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되돌리면 되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연장된 정년을 다시 축소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기득권자들의 반발이 극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생계비 절벽을 그냥 두고만 보자는 것인가? 아니다. 복지 문제는 복지정책으로 풀자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국가의 문제를 생산의 주체인 기업에 은근슬쩍 떠넘겨서는 안 된다. 노년층의 생계비를 지원해 주는 것은 결국 ‘돈’ 문제 아닌가? 국가는 그 돈을 정공법으로 조달해서 이들의 지원에 활용해야 한다.
그럼 누구에게 돈을 더 걷을 것인가? 청년층? 나는 반대다. 그들은 악화한 노령인구 비율에 따라 이미 과도할 정도로 노년층 부양 부담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서 걷어야 하는가? ‘부유한 노년층’에서 걷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노년층은 빈부 격차가 가장 심각한 계층이다. 부자 노인은 몇십억원짜리 아파트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지만, 가난한 노인은 연탄 사서 때기도 쉽지 않다. 부유한 노년층에 추가로 과세하는 방안은 노년층의 빈부 격차를 완화하면서도 가난한 노인들에 대한 부양 부담을 청년층이나 기업에 전가하지 않는 방법이다.
물론 이것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선택이다. 부유한 노년층은 우리 사회의 파워 그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상대로 대의를 설명하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 정치인의 사명이다. 그 길은 정년연장책보다 훨씬 어려운 길이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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