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학자 총재가 윤허하고, 교단 2·3인자의 세부 사항 지시로 김건희 여사 청탁 로비를 시도했다.”
청탁금지법·정치자금법 위반, 배임, 증거인멸 등 혐의로 구속된 윤영호(48)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에 진술한 내용이다. 건진법사 청탁 의혹은 통일교 중앙교단 차원의 조직적 계획과 지시 하에 이뤄졌다는 뜻이다.
31일 중앙일보가 파악한 진술 조서 내용에 따르면 윤 전 본부장은 건진법사 전성배(64)씨를 통한 그라프 목걸이, 샤넬백 등 모든 금품 제공 및 사업 청탁은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의 승인, 최측근들의 세부 지시를 통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윤 전 본부장은 지난 22일 특검팀 소환조사에서 “한학자 통일교 총재의 윤허가 있었다”며 “매일 아침 한 총재에게 주요 사안을 일일보고했고, 주요 보고 사안엔 김 여사 청탁 사항도 포함됐다”고 진술했다.

그는 조서에서 “건진법사를 통해 김 여사에게 목걸이와 명품백 등을 전달하는 방식도 통일교 교단 차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한 총재 휘하의 교단 2·3인자의 실명도 거론했다.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포괄적으로 오더를 내리면 정모 통일교 천무원 부원장과 이모 통일교 중앙행정실장이 구매할 명품 등 디테일을 보강해 청탁 추진 방식을 지시했다”고 하면서다. 정 부원장과 이 실장은 한 총재의 최측근 인사로, 교단 내에선 ‘지도부’라고 불린다고 한다. 처음 건진법사 전씨를 윤 전 본부장이 만나도록 소개한 사람 역시 통일교 원로였다고 한다.
특검팀이 확보한 윤 전 본부장의 수첩, 문자 메시지 등에도 당시 지도부의 청탁 관련 지시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다만 특검팀은 윤 전 본부장의 당시 교단 내 지위 등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지도부의 지시를 수행하는 일방적인 수직 관계가 아니라 함께 논의하며 공모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검팀은 한 총재, 정 부원장, 이 실장을 윤 전 본부장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공범으로 피의자 입건했다. 최근 정 부원장과 이 실장에게 소환조사를 통보했고,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6200만원대 그라프 목걸이, 1200만원대 샤넬백을 구입할 때 각각 상품권과 윤 전 본부장 개인 신용카드로 결제한 뒤 사후 정산한 것도 교단 회계감사를 피하기 위해 사전에 지도부와 논의한 결과인 것으로 파악됐다. 윤 전 본부장과 사후 정산을 담당한 통일교 재단 직원 모두 “회계 감사 때 문제가 되니, 교단 차원에서 사후 회계처리하기로 했다”는 취지로 특검팀에 진술했다. 특검팀은 당시 명품 구매 영수증과 이를 사후 회계 처리한 품의서, 회계 자료 등을 확보했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윤 전 본부장의 아내 이모씨가 각각 2022년 6월 24일 서울 잠실 샤넬 매장에서 샤넬백을, 같은해 7월 29일 압구정 그라프 매장에서 목걸이를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통일교 총재 등 3명 청탁금지 공범…소환 일정 조율

특검팀은 앞으로 ‘한 총재→윤영호→건진법사→김건희’로 이어지는 청탁 의혹 구조를 입증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3번째 고리인 건진법사 전씨가 선물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지만 “잃어버렸다”고 입을 다문 가운데 목걸이와 샤넬백의 행방을 찾지 못해서다. 이와 관련 특검팀은 윤 전 본부장을 구속 다음 날인 31일에도 재소환했다.
수사는 건진법사 국정농단 의혹의 시작점인 한 총재와 종착점인 김 여사 양측을 겨냥하는 방식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김 여사는 다음달 6일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다.

특검팀 수사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도 확산했다. 윤 전 본부장 구속영장 청구서에 “권성동, 전성배 등에게 법이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했다”고 적시하면서다. 특검팀은 2023년께 통일교 측이 권 의원에게 수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1억~2억원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윤 전 본부장은 “권 의원에게 준 현금도 한 총재 윤허를 받았다”는 취지로 특검팀에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검팀은 또 권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대가로 통일교 고위층의 원정도박 혐의에 대한 내사 정보를 통일교 측에 흘려줬다고도 보고 있다.
통일교 측은 한 총재 포함 교단 지도부가 김 여사와 권 의원 로비에 가담했다는 의혹에 대해 “윤 전 본부장 개인의 일탈일 뿐 교단은 청탁·불법 정치자금 의혹과 관련이 없다”고 모두 부인했다. 그러면서 선물 사후 정산은 “당시 재정국장이던 윤 전 본부장 아내가 교단 몰래 명품 구매를 선교 물품 구매 등으로 회계 처리했다”고 말했다.
권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통일교와) 금전 거래는 물론 청탁이나 조직적 연계 등 그 어떤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적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