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원잠→도로 핵잠…열흘새 공식용어 2번 바꾼 정부, 왜

2025-11-12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의 공식 명칭을 놓고 ‘핵잠→원잠→핵잠’으로 입장을 연이어 바꾸며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처음 원잠 도입을 공식화한 뒤 채 열흘도 안 돼 두 번이나 명칭을 바꿨다.

국방부는 지난 11일 “핵잠 용어 재변경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논의를 통해 ‘핵잠’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국민들이 익숙하게 인식하고 있는 용어를 사용하기 위한 취지”라고 밝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이달 5일 “정부 공식 명칭은 원잠”이라고 공개 표명한 지 6일 만에 핵잠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한 것이다. 국방부가 ‘정부 차원의 논의’라고 언급한 건 대통령실의 의중이 반영된 조치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다.

당초 정부가 원잠 도입을 처음 공식화하면서 쓴 건 핵잠이란 용어였다. 언론에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확대 오찬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핵 연료”의 공급을 요청하며 “핵추진 잠수함”으로 표현했다. 같은 날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한·미 정상회담 결과 브리핑 등에서 이 대통령이 썼던 ‘핵잠’ 용어를 그대로 썼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지난 5일 안규백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정부 공식 용어는 원잠”이라고 정정했다. “핵잠을 도입하기로 했는데 공식 명칭을 원자력추진잠수함으로 하기로 했느냐”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그렇다”고 답하면서다.

안 장관은 이어 “핵잠이라고 하면 핵폭탄을 탑재했다고 연상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며 “평화적 이용에 포커스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며 ‘핵잠→원잠’ 변경 취지도 상세히 밝혔다.

국민과 국제사회가 한국이 도입하려는 원잠을 핵무기를 장착해 공격하는 전략핵잠수함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아예 ‘핵’이 들어가지 않는 원잠을 공식 명칭으로 써 핵무기 보유 의도가 없다는 점을 부각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용어 변경은 안 장관의 개인적 의견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결정이었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었다. 이 대통령도 정상회담 당시 핵잠이라는 용어를 쓰면서도 “약간의 오해가 있으신 것 같다. 우리가 핵무기를 적재한 잠수함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중국 외교부의 우려 표명에 대한 입장을 내면서 지난달 31일 “우리가 개발·운용을 추진하려는 것은 재래식 무장 원자력추진잠수함이며, 이는 NPT(핵확산금지조약)에 부합한다”고 했다. 비확산 의무 준수, 평화적 이용 목적 등을 강조하기 위해 외교부는 원잠이라는 용어를 쓴 셈인데, 같은 취지에서 정부가 아예 이를 공식 명칭으로 정한 것이다.

7일 오후 정부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나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의 발표가 늦어지는 배경을 설명할 때도 ‘원잠’을 썼다. 이 관계자는 “원자력잠수함 문제가 굉장히 혼란스럽게 됐다”고 설명했다.

7일 저녁 핵잠으로 회귀 지침

그런데 불과 몇 시간 뒤인 같은 날 저녁 국방부 실무 부서엔 “다시 ‘핵잠’이란 단어를 정부 공식 용어로 하라”는 지침이 전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안 장관이 직접 배경까지 부연한 ‘원잠’을 원래의 ‘핵잠’으로 되돌리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안 장관은 9일 오전 방송 대담에서는 “(한국 조선업이)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기술력에 더해 핵잠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 직후 국방부도 안 장관의 발언을 일부 바로잡는 문자 메시지를 공지하며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대한 미 측의 전반적인 지원 의사를 설명한 것”이라며 핵잠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정부가 ‘핵잠(지난달 29일)→원잠(이달 5일)→핵잠(11일)’으로 불과 열흘 새 공식 명칭이 오락가락하는 건 혼선을 자초할 수 있는 데다 변경할 때마다 내세우는 이유도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잠으로 용어를 바꾼 배경으로 국제 비확산 체제 준수 등을 강조했는데 이를 핵잠으로 되돌릴 때는 “국민이 익숙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는 ‘한국이 도입하려는 잠수함이 핵무기를 탑재한다는 오해를 사도 이제는 상관없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원잠보다 핵잠이 상대적으로 국내 여론의 지지를 얻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가 ‘핵잠은 자주국방의 완성’이라는 선명한 프레임을 구축해 핵연료 확보의 국제적 제약, 천문학적인 비용 등 이슈를 비껴가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며 “핵잠이란 용어가 만들어내는 정치공학적 효과에 기대기보다는 정확하고 현실적인 정보를 국민에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주무 부처인 국방부는 물론 해군 내부에선 당혹스러운 기류도 감지된다. 해군은 원잠 도입이 공식화하기 전부터 ‘평화적 이용’에 방점을 두며 지난 십수 년 간 줄곧 원잠이란 용어를 자체 공식 용어로 써왔기 때문이다. 해군은 지난달 말 국정감사 답변 자료에서도 “원자력추진잠수함은 북한 및 주변국의 해양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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