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구글 앞의 허수아비인가

2024-10-13

박상섭 편집위원

나는 한 때 간첩이었던 적이 있다. 1970년대 초반. 초등(국민)학교시절이었다. 북한 방송을 들으면 잡혀간다는 소문이 흉흉하던 시절. 평상시에 북한 방송 들으면 중앙정보부가 알아내 적발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호기심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틀었다. 북한 방송 전파를 잡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지직 지직하던 중 가끔 북한 방송을 접할 수 있었다. 북한 방송 특유의 목소리 톤이 신기했다.

그렇게 한 국민학생은 간첩이라는 타이틀을 딸 뻔했다. 만약에 잡혔으면 ‘국민학생 간첩 적발’이라고 대서특필했을까. 고문으로 간첩을 많이 잡던 야만의 시절이어서 그렇게 할지도 모르겠다.

▲당시 정부가 말한 간첩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심야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북 방송을 듣는 사람, 6·25 때 행방불명됐다가 나타난 사람, 군부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 군부대 상황을 알려고 하는 사람, 현 정부에 불만이 많은 사람 등이다.

특히 군부대 위치를 알려고 하거나 군부대 주변을 사진 찍는 일은 지금도 터부시한다. 간첩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군부대 위치는 내비게이션을 통해 금방 알 수 있다.

군부대 주변 장소를 입력하면 차량이 저절로 안내한다. 내비게이션이 이적행위를 하는 셈이다. 이것뿐만 아니다. 구글의 위성지도 서비스인 ‘구글 어스’를 통해 국가 주요 안보 시설을 볼 수 있다. 북한이 구글 어스를 통해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주요 안보 시설을 하늘에서 내려 보듯이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군부대 주변을 촬영하면 위법하다는 것이 말장난이 된 셈이다.

구글은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 국가의 안보 시설에 대해서 저해상도 및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있다. 국방부는 2021년 11월 구글 측에 주요 안보 시설에 대해 식별 제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지만 지금까지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국방부로부터 국정감사 자료를 받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형두 의원(국민의힘)은 최근 “필요시 역외 규정을 도입해서라도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는 구글에 대해 시정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국방부도 일처리를 똑 부러지게 해야 한다.

구글 어스를 통해 군부대 위치 등을 누구나 볼 수 있는 만큼 구글을 먼저 처벌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군부대를 촬영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나. 군부대 앞에서 촬영하지 않고 구글 어스를 켜고 군부대 위치나 구조를 파악하면 어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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