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와이너리] 데스크테리어 열풍이 불러온 기계식 키보드의 부활

2024-09-17

[비즈한국] ‘데스크테리어’​라는 말이 있다. 책상(Desk)과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인 데스크테리어는 집안 곳곳을 꾸미는 것처럼 책상 위를 취향에 맞게 꾸미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특정 콘셉트에 맞춘 데스크 셋업을 올리고 관련 제품 정보를 공유하는 문화는 재택근무가 대세였던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더욱 널리 퍼졌다.

컴퓨터 사용 업무에 필수인 키보드는 데스크테리어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다. 저가형 멤브레인 키보드에 질려 뭔가 새로운 것을 찾다가 기계식 키보드에 입문하는 사용자가 점점 늘고 있다. 기계식 키보드란 쉽게 말해 개별 키마다 별도의 기계식 스위치를 써서 일반 멤브레인 키보드보다 내구성을 높인 제품을 말한다. PC 초창기의 대부분의 키보드는 기계식 키보드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을 지나며 원가 절감의 직격탄을 맞고 겨우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 다시 주목받는 것이다.

기계식 키보드 디자인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스위치, 키캡, 그리고 전체적인 틀을 의미하는 하우징을 꼽을 수 있다. 스위치는 바로 위를 덮는 키캡에 가려 직접 보일 일은 거의 없지만 호환되는 키캡 종류를 결정하며 몸체가 투명할 경우 조명과도 연계될 수 있어 중요하다. 손가락과 직접 접촉하는 키캡은 키보드 전체의 인상을 결정하는 부품인데, 기계식 키보드는 키캡 교환이 가능하기에 색상, 재질, 각인이 천차만별이다. 세라믹 재질을 써서 독특한 감각을 구현한 키캡, 과거 수동 타자기의 키 디자인을 재현한 원형 키캡, 완전 투명으로 만들어 내부 스위치가 보이게 만든 키캡, 각인을 모두 없앤 무각 키캡까지 다양하게 구입할 수 있어 취향에 딱 들어맞는 조합을 찾으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표준 배열이 점차 무의미해지고 제조사별 독자성이 강해지고 있는 기계식 키보드 디자인에 정답은 없다. 다만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있다. 하우징에 여백을 주지 않고 키캡으로 꽉 채운 제품이 있는데 이는 치아가 빈틈없이 들어찬 엑스레이(X-ray) 촬영 이미지를 보는 것처럼 답답한 느낌을 준다. 서적의 본문 내지처럼 키보드 하우징도 적절한 여백을 남김으로써 시각적 여유를 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키캡 각인도 중요하다. 틀에 맞춘 듯 너무 사이버틱한 디자인의 폰트는 저렴해 보여서 좋지 않다. 외국산 제품의 경우 각인이 어색한 한글 폰트로 된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들이 모여 키보드 전체의 디자인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키캡 아래의 조명 역시 형형색색 화려한 것보다 단색 혹은 절제된 색 조합이 좋아 보인다. 조명 패턴이 여러 가지라면 처음엔 신기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관심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표준 규격과 너무 멀어진 마이너한 스위치 혹은 배열도 유지보수나 관련 액세서리 면에서 추천하지 않는다.

여러 조합을 통해 개성을 뽐낼 수 있는 기계식 키보드의 가장 큰 단점은 타이핑 소음이 커서 여럿이 모인 사무실에서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계식 키보드를 치는 소리는 웬만큼 시끄러운 사무실에서도 단연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공간에서는 취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매력적인 품목이다. 키보드 부품 커스텀 제작사도 늘어나고 관련 시장이 점차 활성화되는 만큼 전체 수요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복되는 책상 앞 일상이 지루하다면 키보드 교체를 통해 업무 시간의 만족도를 소소하게 높여보는 것이 어떨까.​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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