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할 때 살포시 보드랍게, 포근히 ‘올겨울도 부탁해’

2025-11-08

산양 털로 만든 섬유, 저자극·보온성 등 강점

오버사이즈 대세…넉넉한 어깨선·긴 소매로 ‘여유’ 더해

관리 어렵지만 유행 안 타…지속 가능 패션 주목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옷은 캐시미어 풀오버다. 모든 의류 브랜드에서 가을, 겨울을 알리는 대표 아이템 역시 캐시미어 풀오버다. 살갗에 닿는 가장 부드럽고 편안한 니트웨어,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캐시미어, 특히 캐시미어 풀오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니트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형태를 ‘풀오버’라고 한다. 단추나 여밈 없이 머리부터 툭 걸쳐 입는 방식이라 간결하고 편안하다. 풀오버라는 단어는 ‘over the head’, 즉 ‘머리 위로 입는다’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구조가 단순할수록 소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두꺼운 울이나 알파카로 만든 풀오버는 아우터 같은 분위기를 내지만 무겁다. 반면 캐시미어는 얇든 두껍든 늘 가볍고, 보온성까지 뛰어나며 무엇보다 고급스럽다. 그래서 캐시미어는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 캐시미어는 무엇일까? 캐시미어는 같은 울 계열 섬유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부드럽다. 가는 섬유의 직경은 15~19마이크론으로, 일반 양모보다 훨씬 얇다. 덕분에 피부에 닿았을 때 자극이 거의 없고, 동시에 가볍지만 보온성이 뛰어나 겨울에도 따뜻하다. 이런 장점 덕분에 캐시미어는 오랫동안 ‘섬유의 보석’이라 불려 왔다.

캐시미어는 카슈미르 산양의 털에서 얻는 섬유로, 주로 몽골, 중국 내몽골, 네팔, 인도 카슈미르 지방에서 생산된다. 이 산양들은 혹독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부드럽고 가는 솜털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캐시미어다. 하지만 한 마리에서 채취할 수 있는 양은 연간 200g 남짓에 불과하다. 스웨터 한 벌을 만들려면 최소 3~4마리 산양의 털이 필요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길 것이다. 같은 천연 소재를 사용하는 유니클로의 캐시미어 풀오버와 로로 피아나(Loro Piana)의 캐시미어 풀오버는 왜 가격 차이가 이렇게 심할까? 거의 2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이유는 브랜드 차이, 제조 수량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원료의 차이’가 크다. 원료를 어떻게 가공해서 원사를 만들었는지, 어디서 원료를 가져왔는지가 가격을 좌우한다.

주요 산지는 여전히 중국과 몽골이지만,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일정량의 캐시미어가 생산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동물 복지 기준을 충실히 지킨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방목 환경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산양의 털을 뽑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등 윤리적 생산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은 원료는 이탈리아의 로로 피아나 같은 고급 원사 회사로 수입돼 ‘지속 가능한 캐시미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더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풀오버는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작은 요소 하나에도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최근의 흐름은 오버사이즈다. 특히 방모 캐시미어로 만든 루즈한 풀오버가 그 경향을 잘 보여준다. 편안하면서도 멋스럽고, 넉넉하게 떨어지는 어깨선과 손등을 덮는 긴 소매는 일상적인 차림에도 여유와 감각을 더해 준다. 반대로 소모 캐시미어 풀오버는 몸에 맞게 입는 것이 좋다. 얇고 단정한 라인이 특징이어서 재킷 안에 받쳐 입거나 단독으로 입어도 깔끔하다. 기장 역시 중요한 요소다. 골반 위에서 끊기듯 떨어지는 짧은 길이는 경쾌하고 활동적인 인상을,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긴 기장은 차분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디테일이 단순한 풀오버일수록 핏과 기장의 선택이 곧 스타일을 완성한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소모 캐시미어와 방모 캐시미어는 무엇일까?

소모 캐시미어는 섬유를 길게 뽑아내 촘촘히 꼬아 만든다. 매끈하고 정제된 질감 덕분에 라인이 단정하게 떨어지고, 군더더기 없는 인상을 준다. 몸에 밀착되는 니트나 셔츠형 니트처럼 핏 감이 느껴지는 옷에 적합하다. 얇고 매끈해서 초가을이나 늦봄 같은 계절의 경계에 입기 좋다.

방모 캐시미어는 상대적으로 짧은 섬유를 도톰하게 방적해 포근하고 부드럽다. 올이 살아 있어 표면이 살짝 보슬거리는 것이 특징이다. 볼륨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기 때문에 루즈한 핏의 니트나 오버사이즈 풀오버에 자주 쓰인다. 특히 늦가을과 겨울, 계절이 깊어질수록 방모 캐시미어가 제격이다.

캐시미어에 대해 조금 더 들어가면 ‘번수’라는 개념이 있다. 번수는 실의 굵기를 뜻하며 수치가 높을수록 더 가늘고 섬세한 실을 의미한다. 고번수 캐시미어는 가볍고 부드럽지만, 내구성이 약해 관리가 까다롭다. 반대로 저번수 캐시미어는 조금 더 두껍고 단단한 질감을 주며, 오래 입기에 좋다.

캐시미어가 특별한 이유는 오래 입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잘 관리한 캐시미어는 10년,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 역시 20년 전의 캐시미어 풀오버를 지금도 즐겨 입는다. 좋은 캐시미어는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다. 단정한 라인과 절제된 디자인이라면, 시간이 흘러도 옷장 속에서 여전히 제 역할을 한다.

물론 관리가 중요하다. 캐시미어는 부드러운 만큼 마찰에 약하다. 보풀이 생기면 전용 빗으로 정리해 주고, 세탁은 가급적 드라이클리닝을 권한다. 하지만 물세탁도 가능하다. 찬물에서 헤어 샴푸로 조물조물 빨아 평평한 곳에 널어 자연 건조하면 늘 새것 같다.

지속 가능한 패션이 강조되는 지금, 캐시미어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패션에서 자주 거론되는 문제가 바로 과잉 생산과 빠른 유행이다. 값싼 옷이 빠르게 소비되고 버려지면서 막대한 환경 부담이 발생한다. 이에 반해 캐시미어는 오래 입을 수 있다. 한번 잘 사면 오랜 시간 간직할 수 있고, 크게 유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계절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고, 스타일의 기본이 되며, 시간을 견디는 힘까지 지녔다. 가벼운 소모 캐시미어에서 시작해 두툼한 방모 캐시미어로 옮겨가는 과정은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는 우리의 생활과 닮아 있다.

좋은 옷은 시간을 버티는 옷이다. 유행을 좇아 금세 사라지는 옷이 아니라, 시간이 쌓일수록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지는 옷. 캐시미어 풀오버가 바로 그런 옷이다.

■박민지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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