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유전자 변이 표적을 맞혀라

2025-11-29

폐암은 국내 암 사망률 1위를 차지하는 암으로 악명이 높다. 지난해 암으로 사망한 사람 중 1만9401명(21.8%)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폐암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폐암은 생존율이 지속적으로 빠르게 높아지는 암종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10%대에 불과했던 폐암의 5년 생존율은 신약 개발 등 치료 방법의 발전으로 점차 높아져 2018~2022년 40.6%까지 상승했다.

폐암 환자들의 생존율이 상승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의 힘이 컸다. 첫째는 진단이 세분화됐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폐암을 하나의 질병으로 보지 않고 환자마다 다른 유전자 변이를 정밀하게 찾아낼 수 있게 되면서 환자별 특성에 맞는 치료방법을 더 적극적으로 쓸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둘째 요인은 치료제의 진화에서 찾을 수 있다. 찾아낸 변이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표적치료제가 속속 개발돼 더 나은 치료효과를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폐암은 크게 소세포폐암과 비소세포폐암으로 나뉜다. 두 유형은 암세포의 크기와 성장 속도, 전이 양상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암세포가 작은 소세포폐암은 성장과 전이 속도가 매우 빠른 반면, 비소세포폐암은 소세포폐암보다 암세포의 크기가 크고 종류가 다양하다. 전체 폐암 중 80~85%가 비소세포폐암에 해당한다. 주목할 점은 비소세포폐암 환자 5명 중 약 4명이 유전자 변이를 동반한다는 사실인데, 사람마다 다른 지문을 가지고 있듯 폐암도 환자마다 고유한 유전자 지문을 갖고 있는 셈이다.

유전자 변이 중 가장 흔한 것은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변이로, 아시아 폐암 환자의 약 40~50%에서 발견된다. 이 때문에 국내 환자들은 이 변이를 신속하게 확인하기 위한 단일 유전자 검사를 가장 먼저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밖에 환자 중 10%가량이 갖고 있는 KRAS 유전자 변이를 비롯해 1~5%의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이들이 있는데, 드물게 나타나는 희귀한 변이라도 검사를 통해 판별한 뒤 각각의 변이에 효과가 입증된 표적치료제로 치료할 수 있다.

다만 이 변이들을 한번에 모두 확인하지 않으면 치료 기회를 놓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검사를 통해 주요 변이를 먼저 확인한 뒤,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NGS)을 통해 더 폭넓은 유전자 정보를 확보하는 ‘포괄적 유전자 패널 검사’를 권장한다. 표적치료의 가능성을 넓히는 동시에, 효과가 낮고 환자와 맞지 않아 부작용까지 일으킬 수 있는 항암제를 불필요하게 사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안진석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비소세포폐암은 HER2, RET 등 일부 희귀 유전자 변이에 대한 표적치료제가 이미 개발돼 있고 실제로 높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따라서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전략을 세우기 위해 더 폭넓고 다양한 유전자 변이를 조기에 파악하는 것이 치료 성패를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환자의 80~85%인 비소세포폐암

5명 중 4명이 유전자 변이 동반

검사로 주요 변이 판별부터 해야

표적항암제·면역항암제 등 치료

2종류 이상 ‘병용요법’ 효과적

이렇게 폐암의 발병과 악화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변이를 판별해낸 뒤에는 폐암 생존율 향상을 이끈 또 다른 축인 치료제를 바탕으로 과거보다 나은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비소세포폐암은 유전자 변이가 다양한 만큼 그에 대응하는 표적치료제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현재 유전자 변이에 따라 사용 가능한 치료제로는 EGFR을 표적으로 하는 타그리소(오시머티닙)와 렉라자(레이저티닙), ROS1 표적의 옥타이로(레포트렉티닙), KRAS 표적 루마크라스(소토라십), RET 표적 레테브모(셀퍼카티닙), HER2 변이 표적 엔허투(트라스트주맙데룩스테칸) 등이 유명하다.

또한 두 종류 이상의 치료를 함께 시행하는 병용요법이 더 나은 효과를 나타낸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어 치료법은 점점 더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병용요법에선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항암화학요법 등 2가지 이상의 치료법을 함께 써서 암이라는 적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하는 전략을 활용한다. ‘다중 포위전’을 펼쳐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에 강력한 항암제를 실어 보낼 수 있게 개발된 항체약물접합체까지 사용이 가능해져 폐암 치료에도 고무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항체약물접합체는 마치 표적만 정확히 타격하는 스마트 미사일에 비유할 수 있다. 항체가 암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을 찾아내 결합한 뒤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 약물이 방출되기 때문에 효과가 높고 정상세포 손상은 최소화한다.

대표적인 항체약물접합체인 ‘엔허투’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치료제로, 지난해 국내에서도 HER2 변이 비소세포폐암에 쓰이는 동종 치료제 중에선 유일하게 허가를 받았다. HER2 변이는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약 2~4%에서 발견되는 변이로, 면역항암제를 포함해 이전까지의 치료제로는 매우 제한적인 효과만 보여 환자들의 고충이 컸으나 항체약물접합체까지 도입되며 치료환경이 개선되고 있다.

안 교수는 “HER2 변이 비소세포폐암은 표적치료에도 불구하고 암이 30% 이상 줄어든 환자의 비율을 뜻하는 객관적 반응률이 10~20%로 낮은 수준이었으나, 엔허투는 치료받은 환자의 절반가량에서 종양 세포 축소가 나타났다”며 “드물게 나타나는 변이라도 정확한 진단과 맞춤 약물치료가 결합되면서 폐암 환자 예후가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로선 속속 개발·도입되는 다양한 폐암 치료제들이 빠르게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고 있진 못해 환자와 의료진으로부터 유연한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폐암 치료가 유전자 변이별 맞춤 치료를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치료제와 치료법이 매우 다양해지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HER2와 같이 전체 환자의 2% 정도에서 나타나는 희귀 변이의 경우, 대규모 임상시험 데이터 확보가 어려운 특성을 고려한 급여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며 “국제 치료지침에서 권고하는 표적치료제에 대해선 유연한 급여 평가를 적용해 환자들이 적기에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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