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중국 과학기술은 무엇인가? (2)

2025-12-02

나는 앞서 근래에 한국에서 권위주의적 기술관료주의의 모델로서 중국 과학기술이 소환되고 있으며, 그 장점과 효과에도 불구하고 마냥 상찬하며 따라가서는 안 되는 모델임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과연 권위주의적 기술관료주의가 중국 과학기술의 유일무이한 본질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중국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을 추가로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키워드는 ‘7 대 93’이다. 2024년 12월 31일을 기해 중국공산당 당원 수가 1억 명을 넘어 전 인구의 약 7%에 이르렀다. 사실 중국에서 이 7%의 ‘상면(上面)’ 엘리트와 93%의 ‘하면(下面)’ 비엘리트의 비율은 정치 외 다른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중국 과학기술계도 7%의 우수 인력(물론 최고급 핵심 인력은 훨씬 더 소수일 것이다)과 93%의 뒷받침 인력이 존재한다고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중국 과학기술의 약진의 비결은 이 7%의 엘리트의 유능함과 효율적 정책 설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라면, 마찬가지로 우수한 상층 인재 풀(pool)을 갖고 있는 인도의 과학기술과 경제는 왜 중국처럼 도약하지 못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중국의 93% 하면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하면의 상승 욕망과 기상천외한 기지야말로 중국 과학기술계라는 바다가 오랫동안 누려온 부력(浮力)이라고 본다.

마오쩌둥 시대(1949~1976)의 ‘군중과학’ 노선 덕분에 처음으로 과학기술의 세계에 입문한 옛 농민들이 개혁개방 이후 선전(深圳)으로 이주하여 전자 산업을 지탱한 기술 인력의 저변을 이루었다. 런정페이(任正非)는 칭화대학 같은 명문 공대에서가 아니라 놀랍게도 문화대혁명 시기 혁명의 적자인 인민해방군 군인의 신분으로 처음 과학기술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후 화웨이의 CEO로 떠올랐다. 요컨대, 20세기 말, 21세기 초 중국 과학기술의 급속한 성장을 설명하려면 제도권 안팎을 가로지르는 7%와 93%의 역동적인 시너지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향후 중국 과학기술의 강세가 유지될 것인지 가늠할 시금석은 과연 중국 체제가 93%에 속하는 청년, 기술공, 노동자의 상향 이동과 과학기술계 진입을 어느 정도로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두 번째로 ‘내순환과 외순환의 쌍순환’이라는 틀을 제시하고 싶다. 경제학의 용어로 내순환은 일국 내 재화와 자본의 생산과 유통을, 외순환은 수출입을 비롯하여 세계 시장과 맺는 상호 관계를 지칭한다. 이 개념들은 중국 과학기술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과학기술의 맥락에서 내순환은 중국 내부 기관과 인력의 역량을 잘 유지하고 증진시키는 것을, 외순환은 미국, 유럽, 일본 등이 주도하는 서방의 선진 국제 과학기술계의 성과와 자원과 기회를 중국이 충분히 흡수하고 좇아가는 것을 뜻한다(그런 의미에서 공여국으로서 중국이 BRICS나 아프리카와 구축하고 있는 대외관계는 본고가 논하는 외순환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베이징의 입장에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는 ‘얻음’보다는 ‘베풂’에 방점이 있다는 점에서 중국 내 변방의 낙후한 성(省)과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즉 연장된 내순환이라고 볼 여지가 크다). 이 두 순환을 연결하여 ‘쌍순환’의 시너지를 완성하는 중간 고리로 화교, 유학생, 국제적 연구 협력, 비(非)중국계 기업, 홍콩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래 중국 과학기술의 가파른 성장은 이러한 내외 쌍순환의 균형을 최적화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이러한 쌍순환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특징을 갖는다. 대국이기 때문이다. 변덕스럽고 통제 불가능한 외순환이라는 변수 앞에서 중국은 언제든 넉넉한 내순환만으로도 충분히 생존과 번영을 구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중국의 유구한 역사를 보면, 중화제국의 성세는 언제나 외부 세계를 향한 관용과 학습 속에서 내외 쌍순환의 과실을 제국 안에 차곡차곡 축적하며 달성되었다. 그러나 그 절정에서 중국은 너무 자주 외순환의 문을 닫는 퇴행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정화의 대항해 이후의 해금(海禁)을 택한 명나라가 그러했고, 건륭 연간의 최전성기에 영국의 매카트니 특사를 박대한 청나라가 그러했다. 1950년대에 이룩한 나름의 성과에 고무된 마오쩌둥이 ‘소련 배우기’라는 외순환의 창구를 조급하게 닫아버리고 내부 역량만으로 대약진운동에 돌입한 사례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중국 과학기술계는 다시금 ‘자력갱생’과 ‘기술 자립’을 외치며 외순환과 중간 고리를 위한 공간을 좁혀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혹은 기술 탈취 문제로 대표되듯 외순환을 음성화하고 있다). 서방 세계와 벌이는 전면적인 기술 경쟁에 대해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트럼피즘에 따른 불가피한 대응 전략 때문일 수도 있고, 둘 모두 때문일 수도 있다. 과연 중국이 내순환만으로 끝내 21세기 패권 경쟁의 승자가 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월은 그 가장 밝은 순간 저물기 시작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주로 통용되고 있는 권위주의적 기술관료주의 중심의 중국 과학기술론은 상위 7%, 아니 1% 미만, 즉 빙산의 극히 일각만 바라볼 뿐이다. 또한 그러한 통념은 쌍순환의 역동적인 동학을 온전히 포착하지 못한 채, 내순환을 관리하는 하나의 방법, 혹은 외부의 초엘리트 인재를 중국 내부로 영구 영입하는 전략 정도만 건드릴 따름이다(이는 단기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쌍순환을 단절시키고 내순환에 침잠하게 하는 악수가 될 수도 있다). 중국 과학기술에 관한 한국의 담론과 리터러시가 더 다양화되고 더 제고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앞서 소개한 중국 과학기술의 두 가지 덜 알려진 얼굴로부터 한국은 어떤 교훈을 취할 수 있을까? 중국의 ‘7 대 93’의 시너지를 기억하며, 우리의 과학문화와 과학교육을 되돌아봐야 한다. 상위 7%에서 1%로의 상승, 최상위 인재군의 양적·질적 제고도 중요하지만, 93%에서 7%로의 상승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다루는 데에도, 93%의 인재들이 과학기술 생태계 곳곳에서 담당하는 다양한 역할들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데에도 사회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93%의 ‘하면’이 철저하게 좌절한 부력 없는 바다에는 오직 가라앉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쌍순환’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두뇌 유출’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한국 과학기술계의 모든 인재를 무조건 내순환 안에 ‘잡아둬야’ 한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강박을 차분히 재고해 보자. 지난 세월 이휘소 박사를 비롯한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소속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들이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 채 그저 외국에 일방적으로 ‘뺏긴’ 인재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한국 내 기관과 인재의 역량 발휘, 전 세계의 한인 과학기술인의 활약, 미국·중국·유럽·일본 등 과학 강국의 연구 성과를 서로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순환’시키려는 폭넓은 시야, 대승적 철학, 정책적 기예, 외교적 수완인 것이다(예컨대 재외동포청 같은 기관이 과학기술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 어떨까). 같은 맥락에서 중국 과학기술의 강박적 ‘자립’과 ‘독주’를 바라보며 지나치게 초조해하기보다는, 한국만의 내외 쌍순환을 중단시키지 않고 균형을 갖춘 채 차분히 유지하는 단단함이 요구된다.

현재 한국 정부가 소버린 AI를 주창하면서 동시에 다자주의 국제 질서를 옹호하는 것도 이러한 균형 맞추기의 일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화제국이 아무리 강성하더라도, 한반도의 선조들은 ‘중화’의 영향권의 가장자리에서 그 안팎을 오가며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역사의 계보를 이어갔다. 앞으로의 시간도 우리 편이 아니라고 볼 이유는 없다.

글 이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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