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세글자만 들어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 전상서’라는 제목을 단 3권의 책을 소개한다. 부모님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애절한 심정을 담은 글들을 읽고 나면,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이 틀릴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태성 / 도서출판 코스모스 / 225쪽 / 1만원
부모님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 물리학자에게도 그랬을까? 수필가이자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저자는 여든이 넘은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병환을 맞닥뜨리며 삶의 속도와 무게를 실감한다. 그러곤 부모님과의 추억을 50편 이야기로 갈무리한다.
첫 이야기 제목은 ‘어머니와 장보기’. 저자는 손위 형제들과 터울이 제법 졌기에 어려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초등학생 때는 매일같이 장에 따라다니며 짐을 들어드렸다. 저자는 35년이 지나서야 다시 어머니와 장을 보러 나선다. 시장이 아닌 멀쑥한 대형마트지만 맛있는 생선과 과일, 떡을 고르는 시간은 여전히 큰 즐거움을 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슬픔이 어린다. ‘앞으로 어머니와 얼마나 더 장을 볼 수 있을까.’
이후 아버지의 전립선암, 뇌출혈, 알츠하이머병과 어머니의 대장암 투병 과정을 함께하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반복되는 입원과 수술을 겪으며 ‘왜 노화라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놨는지 신에게 따져 묻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현실로 돌아와 부모님과 제주도 여행을 가고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의 정성 덕일까. 부모님의 병환은 고비를 넘긴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저자는 고백한다. 내 모습이 어떻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사람은 부모님밖에 없었고, 죽을 때까지 그 사랑을 다시 경험할 수는 없을 거라고. 누구나 겪게 되는 부모의 나이 듦과 병듦, 그리고 죽음. 저자의 솔직한 이야기는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김생수 / 정문사 / 160쪽 / 1만2000원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조차도 지나고 보면 그리울 때가 있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뒤엔 그가 아팠을 때조차 그립다. 살아 있을 땐 얼굴을 어루만지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었는데, 이젠 영영 볼 수 없으니 말이다.
부모님을 여읜 김생수 시인의 시에는 그런 그리움이 가득하다. 그는 “다시는 작별하는 운명으로는 세상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시 46편, 아버지를 떠올리며 쓴 시 27편을 묶어 시집을 냈다. 앞서 ‘아버지가 그립다’란 시집도 낸 시인이지만 그리운 마음은 그 후로도 그칠 줄 몰랐다.
어머니를 그린 시에는 그리움과 후회, 애틋함이 묻어난다. 시인은 “아픈 엄마가 없어 걱정 없는 것이 걱정”이라며 “아픈 엄마라도 얼마나 좋았나” 하고 후회한다. 마음속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한 어머니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눈물로 빚어진 이름”이다.
나이가 들어야 이해가 되는 일들이 있다. 시인에겐 아버지의 관절이 그랬다. 안방에서 아버지가 신음하셨던 소리가 이제야 아들 있는 건넌방에 대고 관심 좀 가져달라고 소리치는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리운 마음을 달래고자 아버지가 즐기시던 소주를 홀로 마시는 일뿐이다.
저자는 시집을 출간하며 “이로써 부모님을 영영 보내드린다”고 했다. 수십편의 시를 쓰고 나서야 작별을 고할 수 있는 그 그리움을 차마 헤아리기 힘들다. 책날개에 빼곡히 담긴 32장의 부모님 사진이 시인의 마음을 담은 마지막 배웅인 듯하다.

이한중 / 지식과사람 / 264쪽 / 2만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65년 미국으로 유학 간 아들(이한동 전 국무총리의 동생)이 고국의 부모님께 보낸 편지를 묶은 책이다. ‘그리움은 먼 길을 돌아 당신께 갑니다’라는 부제처럼 그의 손 편지는 이역만리에서 출발해 한국의 부모님께 가닿는다. 지금처럼 소식을 쉽게 전할 수 없던 시절이라 편지 한통은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보물 같았다.
첫 편지는 1965년 6월17일 홀로 미국으로 떠나는 길 위에서 시작된다. 편지 속 그의 마음은 늘 가족을 향했다. 고국에 가뭄이 들었다는 소식에 부모님의 논밭 걱정부터 하고, 동생들의 건강과 학업까지 살뜰히 챙겼다. 다른 날엔 자신은 매일 두번씩 편지함을 확인한다며, 좀 피곤하다가도 편지를 받으면 금세 피로가 풀린다고 적었다.
그해 7월23일 아버지가 쓴 답신도 책에 실렸다. 그런데 아들이 쓴 편지와 흡사하다. ‘내 걱정은 말고 건강히 지내라’는 글엔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편지의 방향은 달라도 사랑하는 마음은 닮았다.
요즘도 누군가는 손 편지를 쓴다. 책상 앞에서 한 사람을 떠올리며 보내는 시간만큼 편지엔 진심이 담긴다. 편지는 쓴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글을 엮은 형 이한강씨는 “아버지 유품함을 정리하다가 빛바랜 동생의 편지를 찾았다”며 “아버지가 생전에 소중히 간직해두었던 것”이라 밝혔다.
푸르른 5월, 편지지 한장에 못다한 말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마음에 쌓아둔 사랑이 종이 한장에 담겨 오래도록 서로를 이어줄 테니.
황지원, 함규원, 조은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