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옛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바라보는 정치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경제 간담회에 한경협만 초청하지 않아 재계에서는 ‘한경협 패싱’이 재점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주식시장활성화 태스크포스(TF)는 지난해 11월 각 경제단체와 간담회를 열었다. 상법 개정안 관련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간담회에는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주요 경제단체 인사가 참석했다. 그러나 한경협 인사는 없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지난해 12월 경제 간담회를 개최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손경식 경총 회장 등이 참석했지만 한경협 인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놓고 더불어민주당이 의도적으로 한경협을 배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경협 관계자도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간담회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한경협이 상법 개정안에 반대해 더불어민주당과 갈등이 빚어진 것으로 본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주주의 권익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상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추진 중이다.
한경협은 지난해 11월 국내 주요 기업 사장 16명과 함께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사장단은 성명에서 “최근 논의되는 상법 개정안 등 각종 규제 입법보다 경제 살리기를 위한 법안과 예산에 더욱 힘써주시기 바란다”며 “상법 개정안은 기업 경영 전반에 상당한 차질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자본시장법 개정 등 다른 방식의 접근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경협뿐 아니라 대한상의나 경총 등도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경협이 주 타깃이 된 이유는 친‘국민의힘’ 성향 인사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한경협 고문은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맡고 있다.
김병준 고문의 존재는 정치권뿐 아니라 한경협 회원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8월 한경협 회비 납부 여부를 묻는 질문에 “(한경협이) 정경유착 고리를 확실하게 끊을 수 있는 인적쇄신이 됐는지 근본적으로 의문”이라고 답했다. 김병준 고문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삼성그룹은 결국 한경협 회비 납부를 승인했다. 그럼에도 다수의 대기업이 정경유착에 휘말릴까 우려하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다만 김병준 고문은 2025년 2월 사퇴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실 과거부터 한경협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2023년 전경련이 한경협으로 재출범할 때 한민수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간판 바꿔 단다고 전경련의 추악한 과거를 국민의 기억에서 지울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며 “알맹이는 그대로 두고 포장지만 바꾸며 국민을 속이려는 행태는 한경협이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한경협은 과거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질타를 받았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주요 정부 행사에서 한경협을 배제해 ‘전경련 패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이 과거 한경협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이제 와서 우호적으로 변하면 명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아직 최순실 게이트를 기억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에 선뜻 한경협에 손을 내밀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 지표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차기 대통령 후보 1위에 올라 있다. 재계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집권이 현실화되면 한경협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 경우 국내 대기업이 정부와의 소통 창구로 한경협 대신 대한상의와 경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경협의 현재 입지가 문재인 정부 당시와 비교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기업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이 한경협을 탈퇴했지만, 현재 4대 기업은 한경협에 재가입한 상태다. 한경협은 하이브와 네이버에도 가입을 요청하는 등 외연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존재감 알리기에도 힘쓰고 있다. 한경협은 지난해 12월 회원사에게 내수 진작을 위한 협조 공문을 보냈다. 협조 요청한 내용은 △연말연시 행사·모임 예정대로 진행 △임직원 잔여 연차 사용 권장 △비품과 소모품 선구매 △행사 조기계약 및 계약금 선지급 △협력사 납품대금 조기 지급 등이다.
류진 한경협 회장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재계는 류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가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류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에 초대 받아 참석 여부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류 회장은 2025년 신년사에서도 “미국 신행정부 인사들과 적극 소통하면서 위험을 낮추고 기회를 넓혀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경협 관계자는 향후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과 관련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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