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문화와 종교

2025-11-10

종교는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그 어떤 철학보다도 더 중요한 존재였고, 평안과 행복을 제공해주었다. 질병과 죽음과 자연이 초래하는 공포와 고통을 덜어주고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얻도록 도와주었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하여 마음을 순화하고 선량한 삶을 살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종교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비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었다. 갈 데 없는 고아들을 구제해주고 사회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또한 장애인들은 종교라는 언덕에 기대어 위안을 얻었다.

종교의 가르침과 인스턴트 문화

물론 일부 종교 지도자들의 탐욕과 부패, 그리고 잘못된 믿음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과 좌절을 겪기도 하였다. 종교 특유의 배타성으로 인하여 갈등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참혹한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량 학살과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학살 등은 무지한 자들에 의해 발생하는 비극일 뿐 종교는 언제나 선과 절제와 봉사를 가르친다.

지구상에서 가장 신도가 많은 3대 종교가 발생 초기부터 큰 성공을 거둔 것은 한 가지 공통적인 교리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만민이 종교 안에서 평등하다’는 교리이다. 사회 계층에 따른 차별이 엄중하던 시절에 약자들도 종교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이 종교들의 성공 요인이자 핵심적 교리였다. 이 교리는 강자들에게도 약자들을 위한 배려와 희생이 왜 필요한 것인지 가르치고 있다. 또한 이 교리는 ‘포용’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른 계층, 인종, 종교에 대한 포용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선행은 나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종교인의 시선은 낮은 곳을 향해야 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고,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끼리 모여 이익 집단을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자는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다. 탐욕을 경계하라는 것은 여러 종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예수님은 심지어 “부자가 천당에 가는 것보다 낙타(또는 막대)로 바늘귀를 꿰기가 더 쉽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우리 사회에는 어떤 길이 조금이라도 복잡하고 어려우면 그 길을 피하고 다른 단순한 길을 찾으려는 사람이 많다. 그동안 사람들의 그러한 성향이 우리의 빠른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는 했다. 한국인들의 창의력은 아주 뛰어나다. 즉흥적으로 더 간단한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해내는 능력은 정말 좋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모든 것에 대해서 빠르고 단순한 길만 찾으려는 문화, 즉 ‘인스턴트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됐다. ‘빨리빨리 문화’라고도 불리는 이 인스턴트 문화는 종교를 대하는 태도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종교에서 스펙 쌓기

내 주변 종교인 중에는 구원과 평안을 너무 간편하게 얻으려 한다는 느낌을 주는 이가 많다. 구원이란 심오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도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인데 필요한 상황에서만 하느님을 찾거나, 개인적 필요에 따라 신앙생활을 취사선택하고, 신앙의 깊은 가르침과 그에 따른 자기 성찰을 소홀히 하는 이가 많다. 인내와 희생을 강조하는 신앙의 근본 가치를 명심하고, 즉각적인 결과보다 영적 성숙의 장기적인 과정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인데 말이다.

스스로 정한 스펙을 충족시키면 구원받는 줄 아는 듯한 이도 많다. 종교적 구원을 마치 대기업 취업이나 대학 입학에 필요한 스펙을 쌓듯이 나름의 종교적 스펙을 쌓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인 줄 안다. 종교에 대한 그런 단순화된 태도는 우리 사회 특유의 스펙 문화와도 연관 있어 보인다. 평소에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면서도 신심을 가지고 매주 교회(절)에 가고 헌금을 내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듯한 사람들도 있고, 대형 교회(절)의 신도가 되고 큰 헌금을 내고 그곳에서 장로 등의 좋은 직함을 따는 것과 같은 스펙을 쌓기만 하면 구원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도 있다.

종교인들은 깊이 있는 배려, 기도, 성찰 등을 통해 파편화된 신앙을 보완해야 한다. 종교를 개인의 평안이나 물질적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세속화된 가치관에서 벗어나,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고 희생과 봉사에 기반한 삶을 추구하는 종교인이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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