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야 한다면

2024-10-17

아빠 잃고 기다리는 아이에게

하늘의 연이 천사처럼 보이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시인

우리는 그 연에서 희망을 본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그대는 반드시 살아/ 내 이야기를 전하게/ 내 물건들을 팔아/ 한 조각의 천과 한 뭉치의 실을 사게,/ (그걸로 꼬리 긴 하얀 연을 만들게)/ 가자의 어딘가에 있을 아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가/ 섬광 속에서 떠나버린 아빠를/ 아무에게도 작별을 고하지 못한 채/ 제 몸뚱이에도/ 제 자신에게도 작별을 고하지 못한 채 떠나버린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가/ 하늘에 떠 있는 연을, 그대가 만든 나의 연을 볼 수 있게/ 잠시나마 아이가 저기 천사가 있다고/ 사랑을 가져다줄 천사가 왔다고 생각하게 해주게/ 내가 죽어야 한다면,/ 희망이 되도록 해주게/ 이야기가 되도록 해주게.”

팔레스타인의 시인 리파트 알라리어의 시 ‘내가 죽어야 한다면’(If I must die)이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계속되던 지난겨울, 트위터로 옮겨간 시는 살았지만 가자지구에 남았던 시인은 죽었다. 알라리어는 문학의 힘, 이야기의 힘을 믿었던 사람이다. 그는 ‘내가 죽어야 한다면’, 이야기가 되게 해달라고, 자신의 물건들을 팔아 잠시라도 좋으니 아빠를 잃은 아이에게 천사처럼 보일 연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이다.

영문과 교수였던 그는 학생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세상, 우리를 인권단체가 발표하는 숫자로만 파악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그러니 우리의 이야기를 직접 써야 한다고, 세상의 모든 언어로 우리의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도록 써야 한다고. 그는 팔레스타인 젊은 작가들과 해외 작가들을 연결하기 위해 ‘우리는 숫자가 아니다’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젊은 작가들의 글을 모아 <가자는 글로 되갚는다>(Gaza writes back)도 펴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싸움의 수단으로서 문학은 너무나 약한 것이다. 적들에게 상처 하나 줄 수 없는 게 문학이고, 머리에 떨어지는 포탄 하나 막아줄 수 없는 게 문학이다. 이 점에서 문학은 이스라엘을 지킨다는 아이언돔의 미사일 하나만큼의 위력도 없다. 알라리어의 죽음과 관련해서 한 인권단체는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알라리어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한 후 그곳을 폭격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이 마구 쏘아댄 미사일 중 하나였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시는 시인을 지켜주지 못하며 아빠를 살려내지도 못한다. 피난처의 무너져내린 지붕보다도 약한 것이 문학이다.

지난주부터 노벨 문학상 이야기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몇년 전 작품을 읽고 팬레터를 보냈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의 수상이라 나 역시 기뻤지만, 기쁜 이야기로도 사람이 소진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느꼈다. 게다가 ‘거대한 파도’ 같은 축하 행렬에 올라탄 문학이 내게는 너무나 낯설어, 축하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물방울 하나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상갓집인데 무슨 마을 잔치냐.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을 떠올리며 한강 작가가 그렇게 말해주어서 고마웠다. 물론 작가는 달을 가리키는데도 사람들은 그 손이 어찌 그리 고우냐고 말하는 중이고, 작가는 전쟁의 폐허를 떠올리는데 그를 배출한 대학은 그의 이름을 단 문학의 궁전을 구상 중이다. 역시 세상은 문학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언젠가 작가 루쉰은 세상에 싸움 거는 일 말고 문학 재능을 살려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 같은 위대한 작가가 되라는 말에 이렇게 대꾸했다. 예술의 궁전에 들어가느니 모래바람 맞으며 사막에서 웃고, 울고, 욕하겠다고. 모래와 자갈에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면 그 피를 꽃무늬처럼 여길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모시고 버터 바른 빵을 먹는 재미”를 누리지는 않겠다고. 아마도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궁전이 문제였을 것이다. 사실 알라리어도 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가르쳤던 영문학자다. 다만 그는 문학의 궁전에 들어갈 왕을 길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사람들보다 오래 남아 이곳을 기억하고 증언할 글을 쓰게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죽어야 한다면 그대는 살아 우리에 대해 말해주길. 나에겐 그런 그대가 문학이다. 청첩장을 돌리고 있는 사람 곁에서 부고장을 돌리는 기분이지만, 나는 우리 곁에 셰익스피어가 있다고 기뻐하기보다 저 사막에서 셰익스피어가 죽었다고 슬퍼하고 싶다. 하늘에 띄운 저 초라한 천 조각이 내가 아는 문학의 천사다. 아이언돔도 지키지 못하는 희망을 지키는 천사. 인류는 2000년 전 한 연약한 인간이 흘린 피에 대한 이야기로 살아왔듯, 그 땅에서 또 다른 연약한 인간이 띄워놓은 연에 대한 이야기로 살아갈 테다. 그렇게 잠시나마 천사를 보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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