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소그룹의 연말 모임을 하려고 일식 뷔페에서 모였다. 특별히 수요일엔 10% 시니어 디스카운트가 있어서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수요일로 잡았다. 그래봐야 2불 남짓 절약이지만, 연금 받는 은퇴자의 사는 방법으로 합당하다 생각했다.
나와 띠동갑 위인 팔순 넘으신 멋쟁이 선배님이 조금 늦게 오셨다. 입구에서 계산하지 않고 직진해서 우리들이 모여 앉은 곳으로 와서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도우미 청년이 선배님의 밥값 계산서를 가져왔다. 일반 어른요금이 찍혔기에 시니어 할인으로 계산해 달라고 요청했다.
젊은 도우미가 선배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대뜸 “How old are you?” 하는 바람에 모두 웃었다.
블루진 상하의에 모자를 쓰셔서 젊어 보였나 보다. 그 원초적인 질문은 적어도 65세 이하로 보인다는 말과도 통하므로 다음 모임의 밥값은 선배님이 쏘시기로 했다. 기분 좋은 착각이 아닌가.
큰수술 후 머리가 하얗게 센 나는, 염색약이 신장 이식 환자에겐 안 좋다기에 흰머리로 산 지 오래다. 머리칼 때문에라도 나이보다 훨씬 많게 보는 이들이 있다.
가끔은 남편을 아들로 보니 난감하기도 하다. 옆에서 내 수발을 드는 남편을 보고 “착한 아드님을 두셨네요!” 하고 염장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모르고 한 소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편이 젊어 보이는 편도 아니기에 억울하다. 그런 내게 “너 몇 살이니?” 했다면 골든벨이라도 울릴 작정인데 그럴 리 없는 현실이 아쉽다.
맥도널드의 커피를 사러 드라이브 스루로 갔더니 말 안 해도 시니어 값 받는다고 “대박!”이라며 좋아하던 때도 있었건만, 이젠 나이만큼만 봐줘도 만족하겠다.
생일이 12월이라 평생 억울하게 애먼 한 살을 더 먹었다. 올 봄 여고 동창들이 졸업 50주년 기념으로 한국에서 모인다며 별칭 칠순 합동잔치라고 했다. 그 칠순이란 말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다. 나는 아직 칠순이 아니라고! 공연히 꼬장 부리느라 가기 싫었다. 심술이 살아있는 걸 보면 아직 젊은가 보다.
고희는 당나라 두보의 시에 나오는 ‘人生七十古來稀(인생 칠십 고래희)’의 줄임말이다. ‘삶에 있어 칠십도 드문 일이다’라는 뜻인데, 평균수명이 늘어난 작금엔 칠순을 넘겨 사는 이가 대부분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나이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그것이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회고한 데서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한 것이 70세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줄여서 종심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종심은 고희 및 칠순과 동의어이다.
나는 만으로 70세가 되는 해의 생일을 칠순으로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70세 생일은 망팔(望八)이라고도 했다던데 이건 고희보다 더 싫다. 일 년 더 있다가 종심 하겠다! 쓰다 보니 나이 자랑했다. 이를 어째.
이정아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