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따뜻한 화목난로, 둘러앉아 마음의 온기 나누며 한결같은 열기로 요리까지
하루 지난 바게트도 마늘버터 발라 바삭하게 구워, 녹인 치즈 찍어먹으면 ‘맛 부활’
고등학교 시절, 겨울이면 우리 학급은 일주일마다 한 분단씩 옆으로 돌아가며 책상 자리를 바꿨다. 온기 접근권을 공평하게 나눠야 했기 때문이다. 시스템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고 교실 한가운데에는 나름 개량된 난로가 있었지만 모두가 학습하기 쾌적한 환경을 누릴 만큼 틀어주지는 않던 시절이라 항상 난롯가 근처, 교실 한가운데만 교복을 입고 추위를 버틸 만큼의 온도를 유지했다.
난로가 있다고 말하면 부모님이 들려주던, 난로 위에 올려서 누룽지를 만드는 양철 도시락이나 선생님이 귤껍질을 모아오게 해서 주전자에 귤차를 끓였다는 식의 추억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난로를 기준으로 동그랗게 ‘꿀잠 영역’이 형성되었다는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교실 가장자리에서 책상에 엎드려 잠들면 ‘동사 직전이 아니냐’는 농담을 했지만 난롯가 앞뒤로 앉은 친구들의 볼은 항상 따끈따끈하고 수업 시간이면 맥을 못 추고 졸곤 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면 난로 주변 자리가 인기를 누리며 그 가까이 있는 친구들과의 사이가 돈독해졌다.
추운 날씨가 좋은 점은 불씨와 사람의 체온이 다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마치 위험한 곳을 함께 지나가면 높아진 심장 박동이 착각을 일으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는 흔들다리 효과처럼, 난롯가의 열기에 차가워진 손끝과 발끝을 함께 녹이고 따스한 음식을 나눠 먹으면 친구 사이도 가족 간의 관계도 훨씬 따뜻한 것이 된 느낌이 든다.
당연히 보일러를 틀듯이 난로를 켜는 캠핑장도 겨울이면 가족애를 돈독하게 만드는 공간이 된다. 텐트 안에서 잠을 청하는 공간을 따스하게 데우는 등유 난로, 어디든 간단하게 들고 다니며 쉽게 발끝을 데울 수 있는 부탄가스 난로, 완전 오픈형 모닥불을 피워 ‘불멍’과 마시멜로 굽기를 동시에 즐기는 화로대, 그리고 연통을 쭉 빼서 본격적으로 장작을 때며 감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화목난로. 이 중에 무엇을 피워도 신나게 놀던 가족들이 추위를 느끼면 옹기종기 온기 근처로 모여든다.
난로 위, 익어가 한솥밥
다양한 난로 소개 제일 마지막 난로에 사심이 가득한 듯한 것은 착각이 아니다. 화목난로는 매캐한 연기는 연통으로 올라가고 타닥타닥 타면서 불씨가 튀거나 장작이 무너져도 난로 안에서 타고 있으니 맨손이 닿는 위험성만 경계하면 안전하게 온기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윗면이 평평해서 무언가를 올려 그 열기로 조리할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하면 주변에 둘러앉아 입구를 열고 타오르는 장작을 바라보며 뜨끈뜨끈한 음식을 나누어 먹기에도 제격이다. 실제로 화목난로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이 티타늄 혹은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 그리고 윗면은 평평하고 양쪽으로 펼칠 철망 날개가 달려 음식을 아주 뜨겁게 혹은 간접 가열로 따뜻하게 조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화목난로 조리는 방한과 더불어 그 열기를 낭비하지 않고 요리에 활용한다는 뿌듯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계속 따뜻함을 유지하면서 여럿이 한 그릇으로 나누어 먹는 종류의 음식이 무엇보다 어울린다. 어묵탕이나 뱅쇼, 앞서 이야기한 말린 귤껍질을 듬뿍 넣은 귤차, 우묵한 그리들 한가득 뭉근하게 익힌 카레 등이 그것이다.
천천히 오랫동안 데울수록 좋은 음식인데 부탄가스를 내내 켜지 않아도 편하게 조리할 수 있고, 불멍으로 시선이 집중되는 곳의 음식을 공유하는 것이 온기로 인한 유대감을 더욱 강화한다. 흔히 한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구성원을 식구라 하고, 돈독한 관계라는 표현을 ‘한솥밥을 먹는 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추위 속에 나누는 따뜻한 음식의 효과를 느끼는 것은 동서양 공통의 감성인 듯하다. 눈 쌓인 산맥과 스키로 유명한 스위스에도 겨울이면 가족이 함께 나누어 먹는 한솥밥이 있으니, 바로 퐁뒤다.
어제의 바게트도 맛있게
스위스 혹은 프랑스 사부아 지역의 전통 요리인 퐁뒤는 추운 산간 지역에서 겨울에 남은 식재료로 맛있게, 그리고 따뜻하게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방법의 하나다.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치즈, 와인, 그리고 오래된 빵을 이용하는 덕분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치즈를 녹여서 빵과 채소 등을 찍어 먹는 음식인데, 불멍과 함께 심심한 입에 끝없이 집어넣을 수 있고 따스함이 유지될수록 맛있다는 특징이 있다. 손을 불꽃에 데는 일 없이 마시멜로를 구울 수 있는 꼬치에 빵조각을 꿰어서 치즈를 푹 찍고, 아슬아슬하게 입안으로 옮긴다. 빵조각을 떨어뜨리는 사람에게는 이런저런 벌칙이 있다는 점을 봐도 ‘즐겁게 나누는’ 음식이라는 정체성이 엿보인다. 여러모로 겨울 캠핑장에 최적인 음식이다.
보통 이때 사용하는 빵은 바게트나 캄파뉴 등 껍질이 딱딱한 식사빵이다. 식빵처럼 부드러운 빵은 꼬챙이에 잘 꿰어서 치즈를 뜨는 연장으로 쓰기에는 너무 연약하다. 튼튼해야 버틸 수 있으니 평소에 빵껍질을 제거하는 사람이라도 퐁뒤를 위한 빵에서는 껍질을 잘라내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도 나는 빵껍질을 먹고 싶지 않다면? 사실 그것이 바로 나다. 그래서 한국인이라면 절대 좋아할 수밖에 없는 퐁뒤용 빵을 따로 만들었다. 바로 죽은 빵을 살리는 간단한 메뉴, 마늘빵이다.
바삭바삭한 껍질이 매력인 바게트는 최상의 상태가 오래 유지되는 빵이 아니다.이때 꺼내는 비장의 무기가 마늘 버터다. 화목난로에 내열용 볼을 올리고 버터를 녹인 다음 마늘과 파슬리, 소금, 설탕을 넣어서 골고루 버무린다. 여기에 손으로 박박 뜯은 바게트를 넣고 골고루 잘 버무린다. 그리고 그리들을 난로에 올려 달구고 바게트를 넣어 달달 볶는다.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불에 골고루 뒤적여가며 노릇해지도록 굽듯이 볶으면 고소한 마늘향이 퍼진다. 오븐 없이 캠핑장에서 만드는 마늘빵 크루통의 완성! 이대로 크림수프에 푹 담가 먹거나 샐러드에 토핑으로 뿌리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퐁뒤다. 퐁뒤는 치즈를 녹이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적절한 맛의 균형을 잡으면서 치즈가 분리되지 않고 골고루 부드럽게 잘 녹은 퐁뒤를 만들려면 다른 재료를 첨가해야 한다. 우선 화이트와인과 레몬즙 등 치즈의 느끼한 맛을 살짝 잡는 재료를 첨가한다. 후추와 다진 마늘도 소량 넣으면 좋다. 진짜 기본은 ‘반으로 자른 마늘을 퐁뒤 냄비 바닥에 살짝 문지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니까, 다진 마늘을 한쪽 분량 정도 넣는다.
퐁뒤용 치즈는 기본이 그뤼에르 치즈, 그리고 여기에 에멘탈이나 기타 잘 녹는 향기로운 치즈 종류를 섞어 넣는다. 시판하는 ‘퐁뒤용 치즈’ 세트를 구입했다면 그대로 사용하면 되나 진짜 치즈를 넣을 경우에는 깍둑 썰어서 옥수수 전분을 뿌리고 살짝 버무리는 것이 좋다. 데우는 과정에서 와인과 치즈가 분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냄비에 화이트와인과 다진 마늘, 후추, 전분에 버무린 치즈를 넣어 은은한 불 위에서 잘 저어가며 고르게 녹이면 끝. 불멍을 즐기며 이것저것을 계속 찍어 먹고 냄비에 붓고 남은 화이트와인을 마시는 일만 남는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마늘빵 크루통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녹인 치즈를 찍어 먹는다. 마늘빵 크루통 퐁뒤는 명예 한국 요리로 지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바게트를 들고 캠핑을 떠날 이유를 만들어주는 불멍의 주전부리 퐁뒤, 꼭 한번 만들어보자.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