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세계속으로] 伊 멜로니는 유럽 극우의 미래?

2025-10-20

다양한 세력 규합해 안정적 정부 꾸려

유연한 정책, 극우의 집권모델로 부상

유럽에서 최근 우파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주목받는 인물이 이탈리아의 총리 조르자 멜로니다. 3년 전 극우 파시즘 세력인 ‘이탈리아 형제’당을 이끌고 멜로니가 집권했을 때만 해도 유럽은 숨죽이고 잔뜩 긴장했었다. 유럽연합(EU)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극우 포퓰리즘이 처음으로 이탈리아와 같은 큰 회원국에서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멜로니는 극우라기보다는 전통적 보수 우파의 기조로 이탈리아를 이끌면서 EU 안에서 안정적인 파트너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멜로니의 가장 두드러진 능력은 다양한 세력을 규합하여 안정적인 정부를 꾸려 왔다는 점이다. 하원의 400석 가운데 이탈리아 형제당은 110여석에 불과하지만 다른 극우 세력인 리가(65석)와 중도 우파의 ‘포르차 이탈리아’(52석)를 아우르는 집권 연합을 형성하고 있다. 중도와 극우를 하나로 묶어 지난 3년간 연정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고, 앞으로 2년을 더 버틴다면 역사적인 장수 내각의 기록을 수립할 태세다. 이웃 프랑스에서 중도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연정을 형성하지 못하면서 총리를 빈번하게 교체하는 상황과 대립된다.

멜로니는 이탈리아 재정을 건전하게 만드는 데도 돋보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2010년대 이탈리아는 유럽 재정위기의 ‘문제아’ 가운데 하나였으나 오랜 긴축과 노력 끝에 2025년에는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탈리아의 국채는 여전히 GDP의 137% 수준으로 매우 높고 성장률도 낮은 편이지만, 프랑스나 미국처럼 지탱하기 어려운 재정적자 수준에서는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멜로니의 이탈리아는 이제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영국을 1인당 국민소득에서 앞지르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랑하고 있다. 실제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이탈리아는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영국의 국민소득을 앞섰다. 명목 소득은 영국보다 여전히 27% 낮지만 말이다.

멜로니의 아이러니는 지난 집권 3년의 성공이 사실은 자신이 비판했던 중도 정권과 유럽 덕분이라는 점이다. 재정 건전성을 위한 이탈리아의 긴축 정책 기조는 2011년 마리오 몬티 총리가 시작했다. 2010년대 중도의 오성운동(M5S)이나 극우의 이탈리아 형제당, 리가 등 이탈리아 신생 정치세력들은 이 긴축 정책에 대한 불만에 편승해 집권했지만, 집권한 다음에도 여전히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성공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멜로니 정부는 유럽이 이탈리아 긴축의 원인이라며 국민을 자극해 집권했으나 코로나 위기 보상정책에서 유럽으로부터 2000억유로에 달하는 지원금을 얻어내 재정 건전화에 큰 도움을 받았다. 긴축과 유럽에 대한 불만을 정치적으로 자극하여 집권한 다음, 실제로는 같은 정책을 꾸준히 유지하는 유연성을 발휘했다.

요즘 세계는 민주국가에서 극우가 무섭게 성장하는 추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에 이어 프랑스나 영국, 독일 등 대표적 민주 선진국들도 예외가 아니다. 당장 프랑스에서 정치 불안정은 조만간 우파와 극우가 이탈리아처럼 연합하여 집권하는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극우의 집권이 불가피한 현실이라면 멜로니처럼 사회 불만을 대변하면서 집권한 뒤 중도적 정책으로 선회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멜로니의 ‘조신함’은 유럽 안에서 아직은 극우가 소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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