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주목한 미국 대선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개인적으로는 그 소식보다도 이후 일론 머스크가 ‘정부 효율부서’의 장관으로 임명되었다는 뉴스가 더 놀라웠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머스크는 ‘테슬라’와 ‘X(전 트위터)’의 CEO이며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위해 ‘스페이스X’를 창업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지난 대선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은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소식이지만, 정부 기관의 요직에 임명된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기업과 정부가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도 경계해야 하는데, 심지어 정부 기관에서 결정권을 행사하는 자리에 거대 빅테크의 수장이 임명되다니? 이것은 그 거리가 가까운 것을 넘어서, 거리 자체를 없애버리는 시도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국가는 공동체를 위해 존속하고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운영된다. 이 둘의 역할과 목적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국가는 기업이 이윤을 과도하게 추구하다가 공공성을 해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업의 활동을 주시하고 이를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 법을 제정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또한 기업 활동으로 인해 침해될 수 있는 공공성이란 특정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예컨대 공정거래법은 시장 내에서 특정한 사업자에게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되었다. 기업이 활동하는 주요 무대인 시장 자체도 공공성 관점에서 관리되어야 하는 범위인 셈이다.
그러나 빅테크의 현직 수장을 정부 요직에 앉힌다는 것은 이러한 국가의 역할을 방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상대는 기업을 그저 ‘경험’했거나 기업에 ‘관한’ 사람이 아니라 현직 빅테크 기업의 CEO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공공의 권한과 정보를 활용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물론 기업도 사회를 이루는 주요 주체 중 하나인 만큼 기업인을 완전히 배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현직 CEO, 즉 기업의 의사결정을 집행하는 이가 공공의 요직을 맡는 것은 민주주의와 공정성을 침해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장관급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테크기업 리더가 공공 부문에 속한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AI·데이터 분과위원회 명단을 보면, 네이버클라우드·카카오헬스케어·KT 소속의 리더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분과에는 학계와 협회 등이 고루 배치된 데에 반해 해당 분과만 전원 기업인이다. 이 위원회에선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각 정부 부처에서 진행하는 굵직한 현안에 대해 토의한다. 최근 논의된 건 행안부에서 203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힌 클라우드 전환 사업이었다. 무려 740억원이 배정된 이 사업에 특정 클라우드 기업 리더가 의견을 낸다는 건 실질적인 이해충돌 아닌가. 심지어 AI·데이터 분과 위원장인 네이버클라우드 하정우 센터장은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국가전략기술특별위원회 민간위원이며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의 초거대 AI 태스크포스(TF)의 장이다. 그 외에도 금융감독원, 중소벤처기업부 등 여러 공공기관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정부의 존립 이유는 국가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이며, 그러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규제하는 일 역시 필수적이다. 그런 만큼 현직 기업인이 정부의 사업계획을 사전에 듣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자리에서 이토록 많이 활동한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여겨져선 안 된다. 기업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참여하는 건 가능하다 하더라도, 특정 기업인들이 공공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쥘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부적절하지 않은가. 기업인들이 줄지어 앉은 자리엔 정작 일반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시민사회의 자리는 없다. 마치 기업인만이 국민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