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노태원 고등과학원장, “기초과학 투자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과학계 인재 줄어드는 것 국가가 나서 해결해야”

2024-10-17

매년 노벨 과학상이 발표될 때마다 한국 과학계는 탄식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아직 노벨 과학상을 배출하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 기초과학 연구 투자 부족이 꼽힌다. 노태원 KAIST 부설 고등과학원장도 한국이 기초과학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투자와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10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고등과학원장실에서 만난 노 원장은 “기초과학은 어디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안정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면서 “정부가 국제 과학계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는 분야의 리더 역할을 하는 국내 연구자에게 안정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노 원장과의 일문일답.

-기초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올해 노벨상은 인공지능(AI)이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존 홉필드 교수는 1982년경 소위 말해 '홉필드 모델'이라는 통계 물리학적인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이것이 지금 이야기하는 인공 신경망의 수치적인 모델이다.

1986년 미국 유학 당시, 지도 교수와 홉필드 교수의 친분으로 그의 연구 분야에 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신경계 뉴런 네트워크를 가지고 숫자를 집어넣을 수 있는 모델이다. 당시 홉필드 교수가 보여준 건 기억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과거 이런 연구들이 현재 AI 발전의 바탕이 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AI 발전을 상상하지 못했다. 기초과학이 어려운 것은 인류에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만, 연구 당시에는 유용성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류에게 중요한 지식과 기술의 기반을 마련한다.

-최근 기초과학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과학계가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현재 많은 연구자가 실질적으로 연구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국 과학계가 투자에 비해 결과의 효율이 높지 않은 측면도 있다. 과학계에 트렌드를 반영한 연구에 집중하는 프레임이 자리 잡다 보니 연구 효율이 낮아진 것이다.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아닌 패스트팔로워(Fast-follower)로서 과제를 계속 빨리 쫓아가는 연구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기초과학 분야는 예산이 확보되지 않거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면 어려움이 생긴다. 때문에 R&D 분야 예산 추진 과정이 급하게 이뤄진 부분이 아쉽다. 국가가 기초과학 분야를 장기적으로 보고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최근 의대 쏠림 현상으로 인해 기초과학 분야를 전공으로 삼으려는 학생은 줄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선진 사회로 갈수록 모든 분야가 골고루 발전해야 한다. 쏠림 현상이 생겨 한 분야만 성장하게 되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분야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의사, 과학자, 엔지니어 등 모든 분야의 인재가 함께 커나갈 필요가 있다.

현재 의대 증원, 의대 쏠림 현상은 단순히 입시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다. 결국 이것은 사회 문제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가 크다. 의대에 가면 처우를 잘 받고, 시간이 갈수록 기초과학 연구자와 처우의 갭이 커진다는 것이다. 의대 쏠림 현상은 경제·사회적인 문제로, 정치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 해결해야 한다.

-취임 이후 추진하고 있는 업무는.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한 것은 세계적인 연구와 인재 양성이다. 지난 40~50년간 우리나라 과학계는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사용했다. 현재 한국 기술 분야의 고민은 세계 최고 기술을 확보하고 초격차를 유지하는 것이다.

임기 동안 연구자가 최상의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 시설, 처우를 만들어 나가겠다. 여러 연구자가 모여 소통하고 창의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문화, 실패를 허용해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보는 관점을 바꿔 나가면 고등과학원이 세계를 선도하는 기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고등과학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고등과학원은 1996년 설립된 한국 최초 순수이론 기초과학 연구기관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연구자가 교류할 수 있는 허브 역할을 맡는 것이다. 한 해 동안 고등과학원에 방문하는 인원만 해도 8천명가량이 된다. 그동안 고등과학원은 여러 학술회의 등을 통해 우리나라 과학계의 지식을 알리고 외국 연구자와의 접점을 만들어왔다. 앞으로도 고등과학원이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미래 세대에게 조언한다면.

▲인문학적 소양을 쌓길 바란다. AI 등 첨단 기술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미래 지도자는 창의적이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리더로서 전체를 끌고 가긴 어렵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문화에 쉽게 노출되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 중 하나다. 디지털 기기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의 경우, 참을성이 부족하다. 또 모든 것을 피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표현의 방식도 빈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세대에게 인문학적 소양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노태원 고등과학원장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 물리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산화물전자공학연구단장, 물성연구소장, 과학기술부 국가과학자, 한국물리학과 회장 등을 역임했다. 올해 6월부터 제9대 고등과학원장을 맡고 있다.

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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