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극 거장 로버트 윌슨 "답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은 질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질문하는 것이 예술이죠. 반대로 이미 답이 나와 있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닙니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예술대학교 남산 드라마센터. 특별 강연에 나선 미국의 전설적인 연극 연출가 로버트 윌슨(83)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한 문장으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질문하는 것". 그는 "답을 주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예술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저는 브로드웨이 연극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조지 발란신과 존 케이지의 작품이에요. 추상적인 작품이죠. 추상성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죠. 대신 생각할 자유를 줍니다. 저는 그 자유를 좋아합니다."

시각 예술과 연극의 경계를 허물며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온 실험 연극계의 거장 로버트 윌슨이 이날 서울예대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윌슨은 서사 중심의 연극적 관습을 탈피하고, 상징과 시각적 표현이 중심이 되는 실험극을 개척한 세계적인 연극·오페라 연출가다.

이번 초청은 서울예대가 매년 실시해 온 해외 아티스트 워크숍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윌슨은 22·23일 양일 간 대담과 특별 강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기 수업에 참여했다. 22일 오후 강연을 마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얼마 전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1인극 '메리 스튜어트'(연출 로버트 윌슨)의 아시아 초연이 한국에서 열렸다. 위페르와의 작업은 어땠나?

매우 즐거웠다. 위페르는 추상성을 이해하는 배우다. 나는 시각적인 부분에 한해 제한적으로 지시했다. 느리게, 빠르게, 크게, 작게, 직선으로, 원을 그리며 움직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진 않았다. 의미를 담아내는 것은 배우의 몫이다. 60년 간 작업하며 단 한 번도 배우들에게 특정한 해석을 강요한 적이 없다.

배우가 연출 의도를 벗어날 때도 있을 텐데.

그들은 그들만의 아이디어를 가질 자유가 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아이디어다. 100명의 발레 무용수가 '지젤'을 공연한다고 가정해보자. 똑같은 군무를 추더라도 유독 돋보이는 몇 명이 있을 것이다. 무용수가 무엇을 느끼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군무가 달리 보이기도 한다. 형식은 프레임이고 수단일 뿐이다.

강연에서 '억지로 메시지를 담지 말라'고 제언했다. 그 이유는.

관객이 스스로 생각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햄릿의 독백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셰익스피어도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연극을 하나의 의미로 만드는 순간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부정하게 된다. 좋은 연극이라면 관객이 작품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하게 해야 한다.

배우에게 연기 지도를 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신체다. 모든 것은 신체에서 시작된다. 모든 움직임은 '정지'를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모든 소리는 침묵을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무용수 마사 그레이엄은 "움직임이 없는 순간은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침묵 속에서도 숨소리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이디어 구상에서 최종 제작까지 당신의 창작 과정을 설명해 달라.

큰 구조를 먼저 그린다. 처음부터 전체를 볼 수 있어야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