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80대 운전자가 한국도로교통공단이 발행하는 ‘도로교통안전 종합정보지’에 손편지로 독자 사연을 보내왔다. 그는 수십 년 전에 취득한 운전면허를 활용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손이 떨려서 10여 분만에 운전을 단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연이었다. 아들 부부가 “면허증이 아깝다고 무리해서 운전하면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며 걱정하자 결국 이번 기회에 운전면허를 반납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내년에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에 처음 진입하는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전체 운전자 중 고령 운전자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고령 운전자 관련 교통사고도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지속 증가
신체·인지 능력 저하 고려해야
운전 능력의 객관적 파악은 필수
운전 능력이 저하된 고령자의 안전을 위한 대책 차원에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별로 운전면허 반납에 따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 운전자 입장에서 운전면허 반납을 결정하기는 말처럼 쉽지는 않다. 지난해 한국도로교통공단이 고령 운전자 4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8%(286명)는 ‘현재 운전면허 반납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유는 ‘시간 단축 등 이동 편의 때문에’ ‘안전운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긴급 상황에 대비해서’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해서’ 등이었다.
안전운전이 가능하다고 응답한 고령 운전자 중에는 본인의 운전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 판단한 사람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노화에 따른 신체적·인지적 기능 저하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분석해 보면 위험 상황을 초기에 인식하지 못해 발생한 경우가 많다. 교통상황에 대해 예민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연구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는 비고령 운전자보다 과속 같은 의도적인 법규 위반 행동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하지만, 신호 대기 중인 차량 사이로 갑자기 보행자가 나타나는 경우 등 예측이 어려운 돌발 상황에서는 고령 운전자의 반응시간이 약 두 배 더 길었다. 고령 운전자는 익숙한 환경에서는 비고령 운전자와 대응 능력에 큰 차이가 없지만, 새로운 환경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교통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게 나왔다.
고령 운전자가 운전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건강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식사와 운동, 두뇌활동 등 건강한 생활 습관이 신체 능력과 인지 능력 저하를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면허를 반납할 때가 됐는지 스스로 운전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이 경우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으면 더 분명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도로교통공단은 65세 이상 운전자를 위해 인지능력 판단 및 안전운전 수칙 상담을 제공하는 ‘고령 운전자 컨설팅’을 전국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실시하고 있다.
2007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고령 운전자가 신분 확인 수단으로 운전면허증을 사용해왔다. 일본 정부는 이런 관행을 고려해 운전면허 반납 이후 금융기관 등에서 본인 확인 서류로 인정받을 수 있는 ‘운전 경력 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쇼핑·숙박 등의 할인이나 운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대중교통을 일정 기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도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면 지자체별로 교통카드 또는 지역 화폐와 현금 등으로 일정 수준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교통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한 이동수단 확충 사업도 추진한다. 앞으로도 제도와 시설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한 이후에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고령 운전자는 인지 및 신체 능력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진다면 운전면허 반납을 고려해봐야 한다.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장려하는 목소리가 자칫 운전할 권리를 빼앗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는 고령 운전자가 운전능력을 점검한 뒤 스스로 안전을 선택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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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한국도로교통공단·운전면허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