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가 33년 만에 2023년부터 조사와 정책 부서를 분리하는 조직 개편에 나선 이후 사건 처리 속도가 약 20%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새 정부 들어 공정위 내부에서 다시 조직 재통합으로 되돌릴지 여부가 검토됐지만 조직 분리에 따른 성과가 확인되면서 현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13일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실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가 2023년 4월 조사와 정책 기능을 분리한 이후 사건 처리 속도가 크게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정책 분리 이전인 2022년에는 사건 1건당 평균 조사 기간이 201일(약 7개월)이었지만, 분리 이후인 2024년에는 평균 162일(5개월 12일)로 줄어들었다. 조직 분리 후 조사 속도가 20% 가까이 빨라진 셈이다. 조사 기간도 약 40일 가까이 앞당겨졌다. 다만 사건 난이도와 복잡성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사건 조사 기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공정위는 2023년 전만 해도 한 부서가 사건 조사와 정책 설계를 동시에 담당하면서 업무 병목이 생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법리 검토와 정책 조율이 같은 조직 내에서 이뤄지다 보니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외부 이해관계자 간 협의가 늦어지는 사례도 자주 발생했다. 이에 한기정 전 위원장이 주도해 행안부와 협의를 거쳐 조사국과 정책국 분리를 단행했다.
조직 분리 제도는 정권 교체 후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면 재검토 대상에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조사와 정책이 분리되면서 정책 일관성이 떨어지고, 의사결정 과정이 지연되는 데다 정보 공유가 제한되는 등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됐다. 가령 조사국과 정책국이 따로 움직이다 보니 정책 방향과 현장 집행 간 엇박자가 발생할 수 있게 된다. 같은 사안을 두고 공정위 내부에서 입장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사는 조사대로, 정책은 정책대로 움직여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는 문제도 발생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또 조사국과 정책국이 서로 다른 보고 체계를 갖게 되면서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거나 중복 업무나 이견 조율이 늘어나는 문제도 있어 조직 간 협업 측면에서 문제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조사·정책 재통합 검토안이 내부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직 분리 후 사건조사 속도 개선 효과가 수치로 확인되면서 재통합보다는 현 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분리 이후 조사국 내부에서 조사 착수 후 심사보고서 작성, 위원회 상정으로 일원화되면서 사건 처리에 속도가 더 붙게 된 셈이다. 특히 정책적 부담 없이 사건 처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신속한 법 집행이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사와 정책 분리가 사건 속도를 앞당긴 것이 객관적 사실로 입증된 만큼 사건 속도를 더 앞당기기 위해 과거처럼 조직을 재통합하는 것이 명분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이양수 의원실에 보낸 답변서에도 "(조직 재통합)은 보다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 분리 체제가 사건 처리 효율성과 독립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며 “지금 시점에서 다시 통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공정위는 조사·정책 분리를 유지하되, 사건 처리의 신속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추가 조직 개편을 추진 중이다. 특히 인력 충원과 부서 간 연계 시스템 개선이 병행될 예정이다. 공정위는 1일 법집행·업무 쇄신 전담팀(TF) 출범 회의를 열고, 국민 체감형 사건처리 신속화와 법집행 신뢰성 강화를 목표로 한 혁신 작업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해당 의원실에 “사건처리 신속화 등을 위해 인력 충원 등 조직 개편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할 게 너무 많은데 인력 부족으로 안 하거나 뭉개고 넘어가는 게 많다는 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일부 소규모 조사 업무는 광역 지방 정부로 일부 위임 또는 위탁하는 것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공정위의 사건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라는 지시인 셈이다.
이에 공정위는 남동일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TF를 통해 사건처리 신속성을 높일 추가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공정위는 구체적으로 △법·제도 및 업무 프로세스 쇄신을 통한 사건처리 속도 향상 △조사·심의 절차 투명성 강화 △신고인 등 이해 관계자의 절차적 권리 확대 △법집행 일관성과 예측가능성 확보 △조직·인사관리 체계 개선 등 5대 과제를 중점 추진한다. 2개월 동안 TF를 통해 5대 중점 과제가 논의되고 연내에 제도 개선책을 최종 발표할 계획이다.